울엄니 맛이랑 똑같아!!
어머님표 시금칫국 성공
50년 이상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산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처음에 같이 살면서 남편과 내가 가장 안 맞는 부분은 입맛이었다.
단맛에 대한 호불호가 가장 달랐다. 나도 나름 음식 잘한다는 얘기를 듣던 사람인데 처음에 기껏 음식을 만들어주면 한입 먹고 난 남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서 상처를 받은 적이 많다.
처음엔 왜 그런 지 이유를 몰라서 나도
'기껏 음식을 만들어줬는데..'라며 서운해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머님은 보통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경외심까지 느끼게 하는 음식을 만드시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셨다. 특히 나물을 먹어보고 어떻게 나물에서 이런 맛이 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최대한 재료 본연의 맛과 풍미를 침범하지 않을 정도로만 간을 하시고 지극한 정성으로
요리를 하신다.
내가 가지나물을 먹어 본 후
"어머님 제가 먹어 본 가지나물 중 최고의 맛이에요.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기름을 아주 쪼금 넣고 국간장도 아주 쪼금 넣고 익을 때까지 계속 서서 달달달 볶은기다"
"와... 엄청난 정성이 들어갔네요!!"
그런 어머님의 건강하고 정성 어린 음식을 오래 먹었던 막내아들이라 웬만한 음식엔 맛있다는 표현을 잘 안 한다.
하지만 정말 맛있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경건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우리 친정은 웬만한 음식에 다 설탕을 넣을 만큼 단맛을 좋아하는 집안이고 시댁에선 거의 음식에 설탕을 넣지 않는다.
남편은 그래서 단맛이 나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확 상해버리는 거다.
처음에 호기 있게 만든 나의 요리에는 당연히 설탕이 듬뿍 들어가 있었다.
그러니 남편이 아무리 표현 안 하려고 해도 표정관리가 안되었던 거겠지..
그날의 저녁 메뉴는 시금칫국과 버섯 불고기, 달래 오이무침이었다.
모든 음식에 설탕을 하나도 넣지 않고 만들었다.
하물며 불고기에도...
내가 음식을 만들었을 때 남편의 가장 큰 칭찬은
"울엄니 맛이랑 똑같아!!"
이다.ㅋㅋ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50살인 남자가 엄니라고 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지만 정말 어린아이 같이 기뻐하는 남편의 표정에 폭소를 터뜨렸다.
"입맛은 참 간사하다."
그렇게 극심하게 달랐던 입맛이 서서히 남편 입맛으로 바뀌어 갔다.
남편은 단 음식은 아예 못 먹으니 자연스레 설탕을 줄여서 요리를 하게 되었고 간사한 혀는 그런 맛에 길들여진 거다.
나도 이제 음식점 가서 너무 달면 못 먹을 정도가 되었다.
아무튼 그날 퇴근한 남편이 음식을 한 입 먹고 이 말을 하기를 기대했었다.
"울엄니 맛이랑 똑같아!!"
남편이 내가 만든 음식의 맛을 볼 때 시험성적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남편의 입만 바라보았다.
그날 최고의 평가를 받은 음식은 시금칫국이었고
국을 한 입 먹은 남편의 첫마디는
"울엄니 맛이랑 똑같아!! 울엄니 비법 가루 넣은 것 아니야?"였다. 성공!!!
(난 그 비법 가루가 어디 있는지도 모름)
이렇게 다른 입맛이 같아지듯, 시금치에 된장국물이 베어 들듯 모든 면에서 우린 서로에게 깊이 어우러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