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유 Apr 29. 2024

사천진해변 앞 아파트에 사는 여자


드디어  강릉으로 이사 오고 오늘이 4일째다.

과연 그렇게 염원하던 강릉에서의 삶이 어떨지 나조차도 궁금했다.


일단 넓어진 집의 사이즈로 첫날은 벅찼다.

용산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살다가 33평 아파트로 오니 남편은 발바닥이 아프다고 했다.


거실 창문을 통해서는 멀리 대관령의 능선이 병풍처럼 보이고 주방 창문으로는 바다가 넘실댄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꿈의 집이다.


거실 중간에 커다란 월넛 우드슬랩을 놓았다.

용인에 있는 작업실에 가서 직접 나무를 골라 맞춘 아이다.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 통나무에 오일을 발라 작업한 작품이다.

거기서 글을 쓰면 저절로 글이 써질 것 같은..



주방 옆 1평 남짓한 방은 기도실을 만들었다. 하얀 원탁 위에 성경책과 묵상책을 놓았다. 문을 닫으면 기도에 몰입할 수 있는 평온함이 감돈다.


그리고 분리형 아파트라 작은 방은 출입구가 따로 나 있다. 처음에 집을 보러 왔을 때 남편이 그 방을 보자마자 " 여보 여긴 상담실 하면 되겠다."라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곳은 두 면에 책장을 놓고 용산 상담실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을 놓아 상담도 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고 집을 둘러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과 감사가 몽글몽글 피어난다.

' 주님 감사합니다'




또 하나의 기쁨이 있다. 빵을 좋아하는 나에겐 더없이 기쁜 일.

아파트 바로 앞에 제빵 명인이 만든 갓 구운 빵을 먹을 수 있는 빵집이 있다. 새벽 6시에 문을 여는데 주말이면 인기 있는 빵은 8시면 동이 난다는 빵성지라고 한다.


오늘 7시쯤 빵을 사러 갔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하나로 묶고, 콧수염을 기르신 인자한 표정의 빵명인이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셨다.


각종 빵이 즐비한 쇼케이스를 바라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지난번에 쫄식빵, 깜빠뉴, 마카다미아빵을 샀으니 오늘은 다른 걸 사기로 결정했다.

" 몽블랑이랑 플레인 크로와상이랑 소금빵 주세요"

하얀 커다란 박스에 담아주셨다.


" 그런데 몇 시에 빵을 만드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보자 명인은 "새벽 1시부터 만들어요" 하시는 거다.

"새벽 1시요?" 너무 놀라 내 눈은 커지고 목소리 톤은 높아졌다. "그럼 몇 시에 주무시는데요?"

그러자 " 6시~7시에는 자야 돼요. 40년을 그렇게 살았어요"

" 아..." 내 벌어진 입은 담을 줄을 몰랐다.


'이분의 삶은 빵이 전부였겠구나..' 경건함, 숙연함에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 사람의 인생을 걸만큼 빵이 중요한 의미셨구나'

목숨을 걸만큼 사랑하는 일이 있었다니 어떻게 생각하면 행복한 분이시라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들어가긴 아까운 마음이 들어 바로 앞 바닷가로 발길을 향했다.



모래사장을 걸어 들어가 바로 파도가 치는 곳에 다다랐다. 오늘의 파도는 좀 센 편이었다.

"촤아악 촤아악~"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잠시 서 있었다.


앞으로 이곳에서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나도 남은 삶을 바칠 만큼 사랑하는 일을 또다시 만날 수 있을지,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다양한 생각들을 고이 간직한 채 남편이 잠자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용산에서 강릉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