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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Jul 13. 2024

강릉에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평생 살았던 고향인 서울을 떠나왔다.

그 말은, 지금까지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원가족을 떠났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강릉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단지 하나님께서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해주신다는 말씀만 붙잡고.


난 용감한 사람이다. 겉으론 용감하지만 마음속에선 떨고 있는 여린 내가 있었다.

생전 처음 서울이 아닌 곳에서의 삶이 어떨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내 옆엔 무조건 내 편인 남편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으리라.


자연의 향기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이사한 다음 날부터 강릉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산과 바다, 하늘과 구름, 논과 밭, 숲길등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우리를 경탄케 했다. 

시시때때로 우리 앞에 펼쳐지는 장관 앞에서 우리는 " 우와, 우와, 우와"를 연발했다.


빵과 커피의 도시인 강릉에선 섣부르게 카페를 차리면 안 된다. 그저 평범한 카페처럼 보여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또 " 우와"하고 감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빵과 커피가 삶의 큰 기쁨인 내게 강릉의 카페들은 기대이상의 맛으로 화답해 주었다.


단지 강릉의 자연이나 카페, 이것만으로도 강릉에 오길 잘했다고 느끼기에 충분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바로 영적인 가족을 갖게 되었다는 거다.

강릉중앙교회에 등록하고 다니다가 우연히 강릉을 그리는 일러스트 작가님을 통해 들어가게 된 속회에서 그런 따뜻함을 경험했다.


40대 3분, 50대 1분, 60대 1분 모두가 성품 좋으신 분들이셨다.

그리고 속회예배를 인도하시는 인도자님.

80세에, 은발의 커트머리, 우렁찬 목소리의 소유자이신 그분.


1시간 이상 성경말씀과 기도로 예배를 인도하시는 모습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고 엄청난 카리스마에 압도되었다.


'나도 저분처럼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지게 될 만큼 멋있으신 분. 요즘 실버가 대세라고, 은발의 유명하신 실버 스타분들이 계시지만 내 눈엔 1등이셨다. 외모도 누구 못지않게 세련되셨지만 믿음도, 성숙함도, 에너지도, 거기에 유머감각까지 최고셨다.


새로운 속회원인 나를 바라보시는 눈빛은 누구보다 따뜻했다. 한 번도 엄마에게서 받아 본 적 없는 생소한 눈빛이었다.

" 너무 예뻐서 제대로 쳐다보질 못하겠어요" 라며 날 칭찬해 주셨다.

태어나서 이런 칭찬은 처음 받아봐서 몸 둘 바를 몰라하는 나에게 환하게 웃어주셨다.


"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강릉에 오게 되었으니 모든 것 주님께 맡기고 기쁘게 사세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주님이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처럼 느껴졌다.

그런 날 바라보시며 같이 눈물을 글썽이시는 거다.


'강릉까지 오게 하신 데는 이유가 있었구나.

평생 외롭게 살아온 나에게 이런 사랑을 예비해 두셨구나..'

이런 사랑이 있을 거라는 건 기대조차 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원가족과의 단절이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순간순간 죄책감이 스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순간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지만 이젠 그만 마음 졸이고, 그만 노심초사 눈치 보며 살고 싶다. 지금까지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른 속회원들도 다 환대해 주셨고 그날 그 모임에서 어디서도 느껴본 적 없는 마음의 평안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환희에 찬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빨강머리 앤이 초록색지붕의 가족을 만난 날의  기쁨을 느끼며..


그 주 주일예배 시간에 예배가 끝나고 나오려고 할 때 인도자님과 마주쳤다.

"인도자님"하고 부르며 스스럼없이 달려가 그분을 안았다. 결코 엄마에게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행동이었다. 나의 이런 행동을 보며 스스로도 놀랐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느끼나 보다. 그 사람이 날 진심으로 존재로서 받아들여 주는지, 좋아해 주는지.. 아니, 애정결핍이 심한 사람들은 특히  기가 막히게 안다.


' 육신의 엄마를 떠나오니 여기서 영적인 어머니를 만나게 해 주시는구나..' 하나님의 섭리는 정말 신묘막측하다.


내게도 날 너무 사랑해 주시는 엄마가 생겼다.

엄마의 사랑을 받는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뭔가 가슴이 꽉 찬 것처럼 든든하고 자신감이 생긴다. 나이 60에 이제야 알게 되었다.


매주 목요일마다 영적인 가족을 만나러 갈 생각에 아침부터 마음이 들뜬다. 사랑하는 가족을 1주일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요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느낄 만큼 행복하다.

새롭게 만난 영적인 가족과 죽는 날까지 쭉 이어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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