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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Sep 08. 2024

강릉 동문선배님들과의 수다타임

권위자 이슈에서 벗어났다


난 원래 연장자들과의 관계가 힘든 사람이다.

특히 여자 연장자들과는 더욱..

차가운 엄마와의 관계에서 따뜻한 경험을 하지 못했고 언니도 없었기에 여자 연장자 앞에선 얼음이 되곤 했다.

아마도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으로 판단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으리라.


그래서 아이들 학부형 관계에서나 대학원 들어와서도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만 어울렸다.

하물며 21살 어린 샘과도 친구처럼 지냈다.

하지만 강릉에 오고 나서 요즘 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학동문 모임에 참석한  벌써 4번째다. 처음엔 큰 기대가 없었다.

연령대가 60대가 주를 이루고 70대 이상도 꽤 있으셨기에.

여자 연장자를 이렇게 많이 만나 볼 기회가 없었는데 동문모임에 오니 70%가 선배님이셨다.


처음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님들 앞에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힘들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아니, 말씀하시는 걸 잘 들어드리면 됐다.

어차피 잘 듣는 거엔 익숙한 상담사니..


생각해 보면 내가 연장자를 힘들어했던 이유는 권위적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는데 그건 부모님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부모님 의견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야 하니 마음속 깊은 곳엔 반항심이 크게 자리 잡았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권위자를 보면 일단은 삐딱선을 탔던 것 같다. 소위 '권위자 이슈'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적인 관계에선 굳이 나보다 손위사람은 피하게 되었으리라.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의 관계에선 최대한 친구처럼 지냈다. 권위의 ㄱ자라도 나에게 느낄까 봐 조심했다. 나보다 연장자는 대학원 선배언니 딱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강릉에 와 동문모임을 참석하면서 내 연장자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선배님들은 전혀 권위적이지 않았고 열린 마음을 가지셨다. 자신의 매력을 돋보이게 외모도 잘 가꾸시고 무언가에 열정을 쏟으시며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나보다 훨씬 영한 마인드를 가지신 분들이 많았다. 80살이신데도 골프를 열심히 치시는 선배님도 계셨다.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나이 듦을 한탄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좀 충격적이었다.

강릉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일까?

보통 서울에 있는 내 또래 동창들만 만나도 삶에 회의적이고 부모님 병시중에, 자신의 노화와 질병에 지쳐있는 친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인상이 참 좋아"

선배님들은 새로운 후배인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해 주셨고 관심을 가져 주셨다.

처음엔 이런 관심과 애정이 얼떨떨했다. 하지만 이젠 감사할 따름이다.


며칠 전 한 선배님이 점심을 사주신다고 해서 나갔다.

동문선배님이 운영하시는 강문해변에 있는 <고씨네 동해막국수>에서 5명이 모였다.

막국수와 메밀김밥을 먹고, <마더커피>에서 감자옹심이 커피를 마시며 4시간 반의 수다타임을 가졌다.


2시간만 앉아 있어도 허리 통증 때문에 힘든 나로서는 어마어마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통증도 잊을 만큼 그날의 대화가 의미 있었다.


70대 선배님들의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70의 나이에도 서울에 막국수 체인점 2곳을 새로 오픈하신다는 소식,

오랜 반려견의 죽음으로 상실을 경험하신 이야기,

그 상실을 통해 남편분이 돌아가신 이후의 삶을 두려워하게 되셨다는 것,

한쪽 눈의 시력이 상실되어 일상이 불편해졌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일하시는 이야기,

나이가 드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게 된다는 말씀,

봉사단체에서 동남아 사람들, 북한 이탈자를 케어하셨던 경험등.


그분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 오랜 삶의 연륜에서 풍겨져 나오는 지혜로움이 느껴졌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곧 맞닥뜨리게 될 인생의 이슈들을 먼저 겪으신 분들이기에 그분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 삶의 미래를 예상해 볼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노화가 두렵지 않아 졌다. 함께 늙어가는 동지들과 선배님들이 있기에...


흐린 날씨였지만 마음은 환해진 시간이었다.

요즘 선배님들의 사랑에 많이 행복하다.

어린 친구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푸근한 여유와 따뜻함이 둥지를 찾은 새가 느끼는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무엇보다 기쁜 건 평생 나를 지배했던 '권위자 이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


남편도 내가 동문모임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즐거워하니 자기도  덩달아 신이 났다.

" 당신 강릉 오고 나서 엄청 잘 나가네" 하면서..

"근데 있잖아..." 그날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말하는 2차 수다타임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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