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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품정리>를 하러 간다

by 정민유


인생서가에서 하는 <죽음을 생각하는 아침> 프로그램 중 6월은 <나의 유품정리 시간>이다.

작년에 여동생의 죽음을 겪으면서 죽음을 너무나 가깝게 경험했다. 동생은 말기암 진단을 받고 3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갔다. 그런데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유품정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아들이 엄마의 죽음 후에 그 일을 해야만 했다. 하물며 카톡에 지인들 목록조차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서 부고를 보내야 하지 않아야 할 사람들에게도 부고를 보내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났다.


그걸 보면서 나는 죽기 전에 자신의 유품을 스스로 정리하는 게 자식을 배려하는 행동이며, 또한 나에게도 친절한 행동이라 느껴졌다. 올해 휴대폰을 바꾸면서 카톡 목록을 정리하고 사진도 최대한 삭제했다. 그러면서 막연하게 또 어떤 걸 정리해야 할까? 생각만 했던 것 같다.


"6월 ❮죽음을 생각하는 아침❯은 ❮나의 유품 정리 시간❯을 갖는 시간입니다. 만약 6월이 나의 마지막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정리하고 싶은 유품을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그 유품이 나에게 갖고 있는 의미를 알려주세요. 인생서가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

어제 아침 인생서가에서 이렇게 문자가 왔다.


이 문자를 받고 나서 계속 생각했다.

'뭘 가져가야 할까?'

오늘 아침 일찍 눈이 떠졌고 잠시 누워서 또 생각에 잠겼다. '죽은 후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게 뭘까?'

그러다가 오래된 일기장들이 생각났다. 책장에 꽂혀 있었다. 일기를 가장 열심히 썼던 2011년의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2010년 40대 중반의 나이에 상담대학원에 들어가고 그다음 해니까 열심히 공부하고, 수련하고, 새로운 사회적인 관계를 재형성한 시기였다. 아울러 아이 셋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면서 내면을 돌아볼 틈이 없다가 새롭게 자아성찰을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당시 참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 셋을 양육하며 대학원 공부에, 상담 수련에, 주일날엔 교회에서 유년부 부장까지 맡았다. 지금 체력으론 절대 감당 못할 스케줄이었다. 내가 저렇게 에너지가 많았던 적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그 시절의 내가 대견하고 기특했다. 그때 열심히 살았기에 50대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으리라.


또 하나의 하얀 작은 일기장도 보였다. 펼쳐서 읽어보니 지금의 남편을 만나 다툴 때마다 썼던 일기장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기 힘든 내 속 마음,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하고 외쳤던 대나무숲 같은 존재. 남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완충제 역할을 해주었다고 느껴졌다. 50대가 넘은 중년의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살면서 어찌 달콤하기만 했겠는가? 그 다툼을 통해 서로가 맞추어져 가고, 어우러지면서 지금의 평온한 관계가 될 수 있었겠지.


이 아침 일기장을 보면서 희미해졌던 과거의 기억들이 색을 입힌 듯 선명하게 다가왔다. 힘겨웠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이겨내고 버텨냈던 그 몸부림이 처절하지만 아름다웠다는 걸...


또 하나는 브런치의 글이다. 2022년부터 3년 동안 정말 호스에서 물이 뿜어 나오듯이 글을 썼다. 거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상처, 아픔, 추억, 사랑 등 모든 것들이 글로 탄생했다. 여한이 없을 만큼 글쓰기에 빠져들었고 글을 통해 치유되었다. 나에게 정말 소중하고 소중하다.


오늘 이 두 권의 일기장과 브런치가 담긴 휴대폰을 들고 모임에 참석하려 한다. 어떤 분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그게 무엇이든 간에 분명 기억에 남을 시간이 되리라 확신한다. 이미 아침에 일기장을 읽어보는 시간을 통해 많은 도전과 영감을 받았다. 요즘 죽음과 친해지는 시간들이 참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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