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나에게 치유의 장소이자 삶의 에너지를 주는 곳이었다. 심리상담으로 에너지가 고갈되거나 내면의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혼자서 바다를 보러 왔었다. 바다를 보며 앉아있으면 고민하던 문제들이 별거 아닌 듯 느껴졌다.
커다란 바다의 품에 안겨 있으면 "괜찮아. 별거 아니야" 라며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아마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게 이런 느낌일 거라 상상해 보았다.
우리가 강릉으로 이사를 오게 된 이유 중 큰 부분도 이렇게 좋은 바다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바닷가 옆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눈 뜨면 바로 바다로 나갔다.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했고 축복이라 느꼈다.
새벽의 일출부터 일몰 때 붉은빛으로 물드는 신비스러운 석양까지 소중히 영상에 담았다.
작년에 우리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마도
"와 너무 멋있다. 너무 좋아. 어쩜 이렇게 예쁠 수 있지?" 이런 말이지 않았을까?
특히 여름의 바다가 가장 아름다웠다. 작년 여름은 우리 부부의 바다 사랑이 최고조로 달했다. 남편은 매일 스노클링을 하며 바닷속 물고기들을 관찰했다. 진짜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을 만큼 소년처럼 기뻐했다. 나도 매일 슈퍼어싱을 하며 바다의 에너지에 흠뻑 젖어 살았다.
그러다 가을을 지나 초겨울이 되어오자 매서운 바닷바람 때문에 바다에 나가기가 쉽지 않아 졌다.
겨울엔 차를 타고 지나며 바다를 볼 뿐 더 이상 바다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거센 바람에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는 두려움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렇게 강릉살이 1년쯤 되었을 때 바다는 더 이상 경이로움을 느끼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덤덤하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이 속상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바다사랑이 식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는데.
누군가가 '바다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은 바닷가에 살면 안 된다'라고 했던가? 익숙함은 그것의 소중함을 퇴색하게 만드나 보다. 너무나 사랑해서, 없으면 죽고 못 살 것 같아서 결혼한 부부들이 시간이 지나 시들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다.
가장 소중한 것은 아무리 익숙해지더라도 그 중요성에 대해 항상 되뇌어야 하는 법!
남편과 만난 지 6년이 되어온다. 매일 붙어 지내니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인지를 일깨운다. 그래서 우린 처음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우린 다음 주에 바닷가의 아파트를 떠나 좀 더 편리한 택지로 이사를 간다. 바다와의 추억을 가득 안은 채.
일상을 사는 데는 바다보다 편의시설이 많은 곳이 더 좋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바다가 보고 싶을 땐 15분 내로 언제든 올 수 있다고 위안을 하며.
그래서 이제는 안다.
강릉 사람들은 바다를 보러 가지 않는다는 말을..
바다는 항상, 언제나 거기 있다는 것을..
강릉살이 1년 만에 깨달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