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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Mar 10. 2022

친정엄마도 꿈이 있었는데..

베이킹

  몇 년 전부터 딸기 철이 되면 꼭 한 번씩 만들어먹는 메뉴가 있다. 어릴 적 엄마가 해주시던 딸기 토르테이다. 토르테(torte)는 독일 과자 종류인데, 스펀지 시트에 잼이나 크림을 올려 만드는 케이크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다양한 과일을 올려 만들 수 있어서 엄마는 사계절 구분 없이 해주시던 메뉴이다. 그런데 내 입에는 딸기를 올려 먹는 게 가장 맛있다. 그래서 나는 1년에 딱 한번 딸기가 나오는 계절에만 토르테를 만들어 먹는다. 사실 사계절 내내 케이크를 만들어먹을 만큼 나는 베이킹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엄마가 베이킹에 얼마나 진심인지는 알지도 못한 채 그저 내 입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온다는 게 좋았다.


  엄마는 참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분이셨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는 청주에 살고 있었는데, 그 당시 청주에서 베이킹을 배울 수 있을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씩 차를 몰고 대전까지 가서 베이킹을 배워오셨다. 그리고 매주 배운 것을 집에 돌아오면 실습하시곤 했다. 우리는 1층에 살고 있었는데 집에서 빵을 굽는 날이면 아파트 입구에 버터 풍미 가득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동네 이웃들은 빵 굽는 냄새를 참지 못하고 우리 집 문을 똑똑 두드렸고, 엄마는 늘 기분 좋게 갓 구운 빵을 차와 함께 대접하시곤 했다. 한 번은 내 친구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엄마가 병문안 선물로 마블 파운드 케이크를 구워주셨다. 병실에서 먹은 그 빵맛을 잊을 수 없는지, 내 친구는 지금도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한다. 그때 먹은 그 빵은 참 부드럽고 달콤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엄마의 빵을 맛본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다 보니 동네에 엄마의 솜씨가 소문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가정 선생님이셨는데, 엄마의 재능을 어떻게 아셨는지 선생님도 베이킹을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가정 선생님이라면 으레 베이킹을 포함한 각종 요리에 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당시 홈베이킹은 지금만큼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방과 후 재능기부 수업 시간에 간단한 베이킹 수업을 몇 차례 하셨다. 엄마가 우리 학교에 와서 수업을 해주시다니 기분이 참 묘했다. 나라면 내가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 앞에서 수업을 한다는 게 두려워서 망설였을 텐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엄마의 용기가 참 대단하다.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엄마는 베이킹을 배우기 전에 지점토 공예에 취미를 붙인 적도 있었다. 지점토로 집안에 꽃병, 액자, 거울 등 다양한 소품을 만들어둔 것을 보고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한동안 우리 집 거실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하얀 점토를 들고 예쁘게 꽃을 빚고 계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요즘은 전문가만 강의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먼저 배운 사람이 나중 배우는 사람을 가르치는 시대가 되었다고들 한다. 생각해보니 이런 일은 예전에도 있었고, 우리 엄마가 바로 자신의 재능을 남에게 선뜻 나누는 분이셨다.


  내가 아는 것을 남에게 알려주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하다 보니 엄마한테는 어느 날 더 큰 수업 제안이 들어왔다. 동네 가전제품 대리점에서 가정용 오븐 홍보를 목적으로 베이킹 클래스를 할 예정인데, 엄마한테 강사로 활동해달라고 했다. 아빠와 결혼한 이후로 가정주부의 삶만 이어온 엄마에게 20년 만에 찾아온 일자리 제안이었다. 엄마는 베이킹 레시피를 보기 좋게 정리해야 한다고 오빠한테 컴퓨터 타이핑을 부탁했다. 수강생들에게 베이킹 재료 구매에 관련해서 좋은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재료상 탐색도 이전보다 더 열심히 다니셨다. 매주 사람들에게 수업을 하면서 엄마에게서는 전문가다운 포스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더불어 엄마의 표정과 모습에서 활기도 느껴졌다. 엄마를 신바람 나게 하는 이 일은 안타깝게도 우리가 서울로 이사 오면서 자연스레 마무리되었다.


  서울에 이사 오고 몇 달이 지났을 때였다. 엄마와 나는 커다란 베개를 나눠 벤 채 방바닥에 누워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엄마가 말씀하셨다.


  “엄마가 살면서 제일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는줄 알아?”


  “글쎄…. 엄마는 언제 행복했어?”


  “나는 가전제품 대리점에서 베이킹 강사 할 때, 그때 너무 좋았어.”


  “엄마는 빵 만드는 게 그렇게 좋아?”


  “빵 만드는 것도 재미있고 좋은데, 그거보다 내가 그때 선생님이 될 수 있었잖아. 엄마는 어렸을 때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거든. 난 누구한테 뭘 가르쳐줄 때 기분이 좋고 뿌듯하더라고.”


  서울에는 자격증은 물론이고 해외 유학 경험까지 보유한 유명 베이킹 강사가 많다 보니 엄마는 서울에서 베이킹 수업을 이어가시지는 못했다. 하지만 잠시나마 엄마의 어린 시절 꿈을 이룰 수 있었다는 기억에 몹시 행복해하셨다. 5남매 중 둘째로 자란 엄마는 남동생들에게 많은 걸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모든 자식들에게 양껏 뒷바라지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들에게 우선권을 주던 시대였으니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생계를 위해 엄마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셨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인생이 참 안타깝고 속상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생각을 내가 이제 와서야 한다는 것이다. 친정엄마에게도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꿈이 있다는 걸 더 진작에 알았으면 어떻게든 등 떠밀어서 베이킹 강사의 길을 이어가시도록 응원했을 텐데…. 고작 스무 살이었던 나는 나의 미래와 내 꿈에만 관심을 갖고 엄마의 이야기는 누워서 그냥 흘려들었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게 속상한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긴 하지만, 그중 가장 속상한 일은 유튜브 시대가 되기 전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건강히 살아계셨으면 내가 유튜브 채널 하나 만들어드렸을 텐데…. ‘빵 굽는 할머니’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사람들에게 쉽고 맛있게 베이킹하는 법을 알려주시면서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매주 엄마랑 만나서 엄마는 빵을 굽고 나는 영상을 찍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과일 가게의 빨간 딸기를 보니 오늘도 또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의 꿈을 곁에서 응원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싱싱한 딸기를 사 와서 토르테를 만들었다. 토르테와 함께 마실 차를 우리는 동안 엄마가 아끼던 딸기 찻잔을 꺼냈다. 엄마한테 따라드린다는 생각으로 정성스럽게 차를 따랐다. 토르테를 한 조각 입에 넣으니 부드러운 빵과 상큼한 딸기의 느낌이 참 좋다. 테이블 한쪽에는 엄마가 물려준 레시피가 보인다. 색이 바래고 모서리가 다 닳은 종이 레시피이지만 난 이게 참 좋다. 엄마가 계셨으면 요즘 스타일로 편하게 보시라고 아이패드에 깔끔하게 레시피 정리해서 넣어드렸을 텐데…. 나는 엄마가 그리운 마음에 아직도 엄마의 손때가 묻은 레시피를 내려놓을 수가 없다. 이다음에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보여드려야겠다. 엄마가 잘 가르쳐주셔서 나는 봄만 되면 맛있는 딸기 토르테를 해 먹을 수 있다고 말씀드려야지. 엄마는 정말 훌륭한 베이킹 선생님이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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