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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May 27. 2022

MBTI 성격이 정반대인 엄마와 딸

공작초

  우리 딸과 나는 MBTI 성격 유형이 정 반대이다. 나는 ISTJ, 딸아이는 ENFP. 우리 둘의 성격 유형은 4가지 문자 중 단 하나도 겹치는 것이 없다. 총 16가지나 되는 유형 중에서 어떻게 한 문자도 겹치지 않는 조합이 나올 수 있을까? 내 뱃속에서 나온 딸이 맞나 싶을 때가 종종 있다.


  MBTI  검사 결과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느끼는 아이와 나의 성향은 참 다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나와 다른 성향의 아이를 보며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신기하고 즐거울 때가 많았다. 나와 다른 스타일의 아이를 키우다 보면 힘든 일보다 도움 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내성적인 나는 어디 가서 모르는 사람한테 말 한마디 거는 게 참 힘들다. 그래서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 엄마한테 좀처럼 내가 먼저 대화를 건네지 않았다. 이런 나를 도와주려는 건지 우리 아이는 종종 또래 아이는 물론이고, 그 아이의 부모들에게까지 서슴지 않고 말을 걸곤 했다. 엄마가 도와주지 않아도 알아서 친구를 잘 사귀는 어린 딸이 참 기특했다. 딸이어도 애교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나에 비해 아이는 애교가 넘친다. 그래서 친정 부모님은 나 키우면서 못 받아본 딸의 애교를 손녀딸에게 넘치게 받았다고 하신다. 엄마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딸에게 감사한 날이 많았다.


  아이와 나는 그림책을 보는 스타일도 참 다르다. 나는 활자를 먼저 보는데, 아이는 그림을 먼저 본다. 심지어 한글을 다 익힌 후에도 아이는 그림을 먼저 보고, 한참 동안 바라본다. 아이와 밤마다 함께 그림책을 보는 시간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의 시간이었다. 나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그림 속의 메시지를 아이가 종종 찾아서 내게 알려주었다. 언뜻 보기에는 내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나는 글자만 읽었을 뿐 그림을 읽어주는 건 딸이었다. 그림책의 매력을 모르고 살던 나에게 그림책 보는 법을 알려준 나의 스승님이 바로 우리 딸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아이와 내가 서로 모르는 세계를 알려주며 알콩달콩 하던 시간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아이는 점점 자기 주관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이가 6학년, 사춘기 초기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가 이야기할 때마다 날이 선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입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해도 아이가 말을 듣기는커녕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 아닐까 싶은 반응을 보일 때면 꾹꾹 눌러왔던 나의 울화통은 폭발하고야 만다.


  ‘그래, 사춘기니까 봐주자! 내가 참자!

  사춘기에는 전두엽에서 확장 공사가 일어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으니까,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겠어?

   그러니까 내가 참아야지….’


  이 생각으로 마음속에 ‘참을 인(忍)’을 새기고 또 새겨봤다. 되도록이면 아침 등굣길에는 아이가 기분 상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수양이 부족한가 보다. 오늘 아침에는 급기야 학교 가는 아이 뒤통수에 대고 잔소리를 연신 퍼부었다. 아이가 현관문을 닫고 나간 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마음이 불편해졌다. 몇 분만 꾹 참았으면 됐을 텐데, 또 이렇게 야단치고 나서 곧장 후회를 한다.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맹자> 책을 펼쳤다. 이럴 때 머릿속의 잡념을 없애기 가장 좋은 방법이 자기 계발 활동으로 신청한 고전 낭독 숙제를 하는 일이다.




  <맹자> 이루 상 7.18 군자가 자식을 가르치는 방법


  제자인 공손추가 물었다.

  “군자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현실적인 상황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올바른 도리로써 가르치려고 하는데, 올바른 도리로써 가르쳤는데 자식이 그 가르침을 행하지 않으면 이어서 성을 내게 되고 이어서 성을 내게 되면 도리어 자식의 마음을 해치게 된다. 그러면 자식은 ‘가르치는 분은 나를 올바른 도리로 가르치려고 하지만, 정작 가르치는 분의 행동은 올바른 도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서로 자식을 바꾸어서 가르쳤다. 

  부자간에는 선을 행하라고 질책해서는 안된다. 부자간에 선을 행하라고 질책하게 되면 사이가 멀어지게 되는데, 부자간의 사이가 멀어지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

  


  세상에! 덕을 쌓고 도를 깨우친 군자도 내 자식을 직접 가르치다 보면 화를 내고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니…. 한낱 범인에 불과한 내가 자식을 가르치려다 전쟁터 같은 집안 분위기를 만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고전을 읽다가 이렇게 위로를 받는 날은 처음인 것 같다. 이래서 옛날부터 내 자식은 내가 못 가르친다는 말이 있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위로받는 순간도 잠시일 뿐, 이내 마음이 답답해졌다. 예전에는 대가족이 함께 살았고, 동네에 친족들이 모여 살았으니 서로 믿고 자식을 바꾸어 가르치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내 자식을 내가 키워야지, 누구한테 자식 교육을 맡길 수 있을까?


  고전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주변 엄마 선배들의 이야기를 참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사춘기 딸과 엄마가 함께 저술한 <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를 읽고 감동받았던 날을 떠올려봤다. 제목만 봐도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부여잡을 만큼 깜짝 놀랄만한 책이다. 중학생 딸아이가 약을 먹고 응급처치를 받고 집에 돌아오던 날, 엄마와 딸은 깊은 대화를 밤새 나누었다고 한다. 그 대화의 시작은 둘의 ‘화해’가 먼저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부모와 의견 충돌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들은 입을 닫고 방문을 닫아버린다. 아이와 대화가 점점 사라지면 답답한 마음에 부모는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사실 솔직한 내 마음은 대화보다도 아이한테 사과를 받고 싶었다. 엄마 말을 듣지 않아서 죄송하다고 아이가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먼저 소리를 지르고 싸움을 건 사람은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싸웠으면 일단 화해부터 해야지. 더 어린 아이들한테도 싸우면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라고 가르치니까.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일단 화해부터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 나니 화해라는 꽃말을 지닌 공작초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꽃잎 색깔에 따라 백공작초, 청공작초, 핑크 공작초가 있는데 그중 청공작초가 우리 모녀랑 참 닮은 것 같다. 꽃의 중심부의 노란 꽃술과 그 주위를 둘러싼 보라색 꽃잎. 노란색과 보라색은 보색에 가까울 만큼 강한 색상 대비를 이룬다. 하지만 공작초의 노랑과 보라는 강렬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린다. 다투고 난 뒤 서로 엇나간 두 마음이 다시 하나로 모인 것 같아서 이 꽃은 ‘화해’라는 꽃말을 갖게 되었을까? 극명한 성격 대비를 이루는 우리 모녀도 각자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면서도 보기 좋게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인다. 다투고 나서 화해만 잘한다면 말이다.



  혼자 공작초 사진을 꺼내보며 이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어느덧 아이의 하교 시간이 됐다.


  “엄마! 오늘 체육 시간에 내가 우리 반에서 달리기 1등 했어! 어제 엄마가 새로 사준 운동화를 신어서 그런가 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이미 아침에 있었던 일은 다 잊은 것 같았다. 역시 우리 딸은 뒤끝이 없는데, 속 좁은 나만 몇 시간째 혼자 꽁하고 있었나 보다.


  “엄마한테 뭐 서운한 거 없어?”


  “아니 왜?”


  “아침에 엄마가 야단쳐서 미안해.”


  “괜찮아.”


  “혹시 다음에는 엄마랑 싸우고 나면 엄마가 뭘 해주면 좋겠어?”


  “빙수 사줘! 과일 빙수!!”


  “그래, 알았어.”


  “엄마는 내가 뭐 해주면 좋겠는데?”


  “엄마 좋아하는 거 뭔지 알지?”


  “꽃?”


  “응, 엄마한테 꽃 한 송이만 사줘. 그날 꽃집에 있는 것 중에서 네 눈에 가장 예뻐 보이는 거로 선물해주면 돼”


  “오케이!”


  경쾌한 딸아이의 목소리에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우리만의 화해 방식을 정했으니, 앞으로 싸우면 오늘 약속한 대로 화해를 시도하자.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우리 사이의 사랑도 더 단단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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