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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Aug 25. 2022

월트 디즈니에게 바란다.

프랑스 여행

  "엄마, 하늘이 토이스토리야!"


  파리 디즈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핑크빛 공주의 성 뒤로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배경이 펼쳐졌다. 영화 <토이스토리> 포스터에서 봤던 그 하늘이었다. 디즈니 전용 하늘이라도 가져다 놓은 것일까? 공주의 성을 향해 한 발자국씩 발걸음을 뗄 때마다 점점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번이 디즈니랜드 첫 방문은 아니었다. 5년 전 미국 LA에 있는 디즈니랜드를 처음 경험한 날 마음속에 장기 플랜을 세웠다. 죽기 전에 전 세계 디즈니랜드 6군데를 모두 가보겠다고.... 발을 들이는 순간 동화 속으로 날 데려가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게 참 행복했다. 짜릿한 놀이기구를 타는 재미도 좋았지만, 모든 놀이기구가 디즈니 콘텐츠와 연결되어 있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인기 있는 놀이기구를 탈 때마다 1시간씩 기다리기가 일쑤였지만 대기선에 서있는 동안 디즈니 캐릭터를 상기시켜주는 다양한 장치들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시간을 보냈다.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아침부터 밤까지 놀이공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아이와 함께 즐겨보던 디즈니 영화를 하나씩 소환했다. 놀이기구를 타고나면 거기에 또 하나의 행복한 기억이 추가됐다. 이렇게 우리의 추억 상자를 풍요롭게 채워주는 디즈니가 나는 참 좋다.


  이번 프랑스 여행에서도 디즈니랜드 방문을 빼놓을 수 없었다. 파리 시내 중심에서 즐길 것들만 해도 엄청나서 여행 계획을 세우는 동안 디즈니랜드를 일정에 넣었다 뺐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각 나라마다 디즈니랜드의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 세계 어딜 가나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매장 느낌이 비슷한 것과 마찬가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미키마우스 동상이 입장객들을 반겨준다. 그리고 디즈니 타운의 시작을 알려주듯이 디즈니 시청 건물이 초입에 자리 잡고 있다. 시청을 지나면 양 옆으로는 아기자기한 상점과 레스토랑이 줄지어 서있고 저 멀리 공주의 성이 보인다. 입장 시간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공주의 성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간다. 이 모습은 흡사 성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던 겨울왕국의 아렌델 백성들 같다. 다시 가보지 않아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는 디즈니랜드다. 그런데 꼭 여길 가야 할까? 이곳을 포기하는 순간 파리 여행 일정이 훨씬 여유로워질 텐데.... 백번 고민해봤지만 결론은 Go였다.


  파리 디즈니랜드만의 독특한 느낌을 기대해서 간 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느낌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갔다. 역시나 예상대로 입장과 동시에 나는 프랑스 국경선을 넘어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간 느낌이었다. 그곳은 전형적인 신대륙 세상이자 디즈니 세계였다. 익숙한 디즈니 캐릭터들을 구경하며 놀이기구를 타고, 점심으로는 핫도그에 감자튀김을 먹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옆에서 들려오는 언어가 영어가 아니고 불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이번 디즈니랜드는 딸아이와 단둘이 방문했다. 디즈니 공주님을 만나는 게 소원이던 꼬마 숙녀는 이제 키가 나만한 13살 언니가 되었다. 초등 고학년답게 퍼레이드 구경, 캐릭터 인형과 사진 촬영은 안중에도 없었다. 연신 스릴 있는 어트랙션만 집중 공략했다. 놀이기구와 함께 공중으로 방방 뜨다가, 갑자기 수직 하강하다가, 으스스한 장면에 소름이 쫙 돋기도 하고, 우당탕탕 좌우로 흔들리며 전력 진주하는 기차 안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너무 아찔한 놀이기구만 연속으로 타서 그랬을까,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배가 찌릿찌릿한 느낌이었다. 잠시 앉아서 쉬어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어디선가 샹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드럽게 굴러가는 샹송 멜로디를 따라 걷다 보니 고소한 치즈 향이 코 끝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파리 거리를 옮겨다 놓은 것처럼 노천카페가 늘어서 있는 거리에는 와인을 파는 부스도 보였다. 핫도그에 콜라를 팔던 미국 놀이공원이 사라지고, 갑자기 파리 본연의 감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파리 미슐랭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를 소재로 한 놀이기구가 있는 구역이었다. 온통 미국 분위기로 꾸며진 디즈니랜드 안에서 이곳만큼은 프랑스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목을 축일 겸 음료수 한잔 하면서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쉬고 싶었다. 노점 부스에 가서 메뉴판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걷고, 놀이기구를 타며 소리 지르던 터라 몹시 피곤했다. 알코올이 몇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몸이 노곤하게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놀이공원에서 와인을 마시는 낭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프랑스가 아니라면 언제 이런 걸 해볼 수 있을까? 로제 와인 작은 병을 하나 사들고 벤치에 앉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영화 <라따뚜이> OST, La Festin 멜로디에 맞춰 핑크색 와인을 잔에 따랐다. 놀이공원 방문과 파리 시내 명소 구경 사이에서 고민하던 날이 떠올랐다.  고민이 무색하게  가지 토끼를  잡은  같아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현지 분위기에 맞춰 로컬라이즈를 제대로  디즈니라니,  그래도 사랑하는 디즈니인데 애정의 크기가  커지는 순간이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흥얼흥얼  잇고를 따라 부르던 5 꼬마와 함께 디즈니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보물 상자 열어보듯 하나씩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틀어보면서 우리는 방구석에서  세계로 모험을 떠나고 각국 문화를 익히기 시작했다. 겨울왕국을 보며  번도 가본  없는 북유럽의 새하얀 눈밭을 느껴보고, 모아나와 함께 하와이 전통 의상을 입고 태평양에서 파도를 탔다. 코코를 보며 지구 반대편에 사는 멕시코 사람들의 사후 세계관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광활한 중국 대륙을  타고 달리는 용감한 여전사 뮬란을 보며 남성 중심적이던  옛날에 우리가 살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디즈니는 우리에게 단순한 흥미  이상의 많은 것들을 선사해줬다.


  지금껏 디즈니 콘텐츠를 즐긴 것만 해도 월트 디즈니에 참 감사하지만, 이왕에 많은 선물을 해주신 김에 하나만 더 주셨으면 좋겠다. K-컬처가 대세인 세상이니까 한국인 주인공 캐릭터로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하나 만들어주시면 어떨까요? 올 가을이면 마블에서 한국인 영웅 캐릭터로 만화책이 나온다는 기사를 보긴 했다. 성조기가 그려진 수트를 입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태극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한국 히어로가 주인공이라고 한다.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왕이면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취향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애니메이션 영화도 나왔으면 좋겠다. 디즈니와 함께 커가는  세계 어린이들이 한복을 입고 김치와 밥을 먹는 디즈니 캐릭터를 영화로 만나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우리 아이가 디즈니 영화를 보며 각국 문화를 접한 것처럼 다른 나라 아이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며 한국 문화를 알아갈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영화가 나온다면 개봉하는  바로 극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 굿즈 쇼핑도 잊지 말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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