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 소녀의 행복한 삶을 기원하며

프랑스 여행

by 플로리나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하던 날, 이날도 파리 거리는 동화 같았다. 파리 하늘에서는 누가 솜사탕을 매일 만들고 있는 걸까? 파란 하늘에 흩뿌려진 솜사탕 구름은 세느강을 따라 걷는 길을 더 달콤하게 만들어줬다. 아이와 느긋하게 산책하듯 거닐며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진첩에 담기는 엽서 같은 장면처럼 내 마음속에는 행복한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여행지에서만큼은 무거운 현실을 떠나 비현실적인 환상만으로 카메라 롤을 가득 채워서 돌아가고 싶은 게 여행자의 마음이다. 하지만 낭만의 도시 파리에 가나, 유럽 부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 니스 바닷가를 거닐 때나 마음이 불편해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기 마련이다.


파리의 아이콘, 루브르 박물관 앞의 투명 피라미드를 향해 골목 모퉁이를 돌던 순간이었다. 동전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우리 아이의 발끝에 걸린 플라스틱 박스 안에 있던 동전이 사방으로 흩어진 것이다. 당황한 아이와 나는 얼른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흩어진 동전을 주워 모았다. ‘아임 쏘리’, ‘파흐동’(프랑스어로 미안합니다라는 의미)을 연달아 외치며 재빨리 동전을 모아서 주인에게 돌려주려던 순간,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바닥에 앉아있던 동전 박스의 주인은 우리 딸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집시 소녀였다. 커다랗고 맑은 눈망울을 가진 소녀의 얼굴은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편안해 보였다. 소녀에게는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지는 벌어지는 일상 같아 보였다.


거리 한복판에 앉아서 구걸하는 일이 아무렇지 않고, 내 밥그릇과 마찬가지인 동전 박스를 누가 걷어차도 미동도 하지 않을 만큼 태연한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소녀를 뒤로 하고 걸어가면서 나는 갑자기 합리적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동전 박스가 소녀 바로 앞에 있지 않았다. 소녀는 골목 가장자리에서 건물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고, 동전 박스는 길 한 복판에 있었다. 고개 숙이고 바닥만 유심히 살펴보며 걷지 않는 이상, 대다수는 그 박스에 발이 걸리기 마련이다. 미안한 마음에 동전을 주워주며 내 주머니에 있는 한 푼이라도 더 꺼내게 만들려는 수법이었을까? 설마 내가 허둥지둥 동전을 줍는 동안 그녀의 일행이 내 가방에 손을 넣었던 건 아닐까? SNS에서만 보던 유럽 소매치기 수법인가 싶어서 순간 아찔해졌다. 가방 속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모든 물품이 다 제 위치에 있었다.


아무런 의도성이 없는 행동이었다면 그녀에게는 미안하다. 어찌 되었든 세계적인 유물을 만나러 아이 손을 잡고 박물관으로 향하던 길에 구걸하는 소녀를 마주치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집시 아이들은 본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부모나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환경에 태어난다.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구걸하거나 소매치기 기술을 배우게 된 그들은 그 일이 부끄럽거나 잘못된 일이라는 인지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 왜 소매치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이해하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집시들의 삶과 EU 국가들의 환경을 생각해보니 그럴만하기도 하다. 소매치기들을 경찰이 붙잡아 신원조사를 하면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출생 등록조차 안 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 마디로 국적을 포함한 신상 정보를 알 수 없는 미성년자이니, 이들을 공권력으로 처벌하거나 보호해줄 수 조차 없는 것이다. 차라리 이들을 붙잡아두고 교화시킬 수라도 있으면 다행일 텐데,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 나라로부터 추방하는 것 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이들을 추방해도 몇 달 후면 또 국경을 넘어 관광객이 모여드는 대도시로 돌아온다. EU 국가 내에서는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적, 공적 자원을 들여 애써봤자 도돌이표가 되는 게 현실이니 국가에서도 어느 순간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게 이해된다.


왜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돈 벌려고 노력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이가 이야기했다. 아이한테 동화같이 아름다운 모습,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세상만 보여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 뉴욕에 갔을 때였다. 미드 속에서 보던 맨하튼 빌딩 숲 속의 세련된 공원, 브라이언트 파크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중 갑자기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노숙자가 근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하늘을 찌르는 반짝이는 고층 빌딩과 대조를 이루는 그의 모습은 참 씁쓸했다. 그 광경이 아이의 눈에도 어색했는지, 아이는 지금도 뉴욕은 냄새나고 더러운 도시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때만 해도 아이가 너무 어려서 빈부 격차와 사회 부조리,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개념을 이해시켜주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 초등 고학년이 된 아이한테는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했다.


아이한테는 프랑스 루브르라고 하면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박물관 앞에서 마주친 집시 소녀의 눈망울이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의 약속, 굳은 결심이 자물쇠와 함께 단단히 잠겨있는 파리 예술가의 다리 위에서 나도 간절한 소망을 붙들어 매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 내 아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안락한 환경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 피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되길

- 많은 사람들에게 기초 생활환경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조력할 수 있는 의식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이렇게 여행을 통해 우리는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세상을 들여다보고,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본다. 이날의 기억이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오랫동안 나침반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살만한 세상,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길을 향해 우리도 함께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