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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Jul 22. 2022

나만 이국적인 느낌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

프랑스 여행

  팬더믹이 오기 전에는 여행이라고 하면 으레 해외여행을 떠올리곤 했다. 가끔은 나 자신이 된장녀 같고 문화적 사대주의에 빠진 사람 같아 보여서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뿐인 귀한 휴가를 보내는데 남의 눈치를 먼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한 해 동안 고생한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이니까 내가 가보고 싶은 곳에서 평소와는 다른 특색 있는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었다. 내 나라로부터 멀리 떠날수록 더 신선하고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져서 좋았다. SNS에서 미국병, 파리병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글과 사진을 볼 때면 저 사람도 나랑 비슷하구나 싶어서 반가웠다. 마음속의 병을 치유하고 싶어서 기회만 되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곤 했다.


  서양의 문화와 분위기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살긴 하지만,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 앞에 ‘한국의 나폴리’, ’ 한국의 알프스’와 같은 표현을 적어둔 걸 보면 속상했다. 왠지 서양의 문화와 자연을 더 높이 평가하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 같았다. 더 마음이 상할 때는 서양 사람들이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할 때였다. 유럽으로 여행 가는 한국인 관광객 규모가 얼마나 많은데, 우리를 보고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묻는 걸 보면 자존심이 상했다. 물론 이런 기억은 아주 오래전이다. 어린아이를 키우느라 장거리 여행을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고, 팬더믹으로 하늘길이 막혀서 최근 몇 년간은 꿈꿀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십여 년 만에 다시 밟아본 유럽 땅,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에 취해서 파리 거리를 걷고 있던 중 반가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식당이었다. 거리에 동양인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2년 이상 이곳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또한 별로 없었을 거다. 도심 한가운데서 한국 교민들만을 대상으로 식당을 운영하기에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궁금한 마음에 식당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신기하게도 서양인들이 한식당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한국 마트가 눈에 보였다. 구멍가게 수준이 아니라 규모가 꽤 큰 슈퍼마켓이었다. 아이가 컵라면을 사달라고 해서 마트 안으로 들어가 봤다. 집 앞의 슈퍼마켓에 온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익숙한 제품들이 보였다. 라면, 과자 등 가공식품은 물론이고 김치와 김밥까지 종류별로 준비되어 있었다. 마트에는 우리 같은 한국인 관광객도 몇 명 있었지만 의외로 서양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라면과 김 봉지를 보니 나도 모르게 양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것 같았다.




  “캄사합니다!”


  주요 관광지를 구경하고 나올 때마다 익숙한 인사말이 들렸다.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제가 한국 사람인 걸 어떻게 알았어요?”


  “한쿡말 잘 못했요. 다른 건 몰라요.”


  아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게 미안하고 머쓱한지, 직원은 어설프지만 더듬더듬 우리말로 또 이야기를 건넸다. 반갑고 감사한 마음에 나도 최대한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화답했다.


  “Merci beaucoup. Au revoir.”

   메(흐)씨 보꾸우. 오 흐브아.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프랑스 현지인들이 우리의 겉모습만 보고도 한국인이라는 걸 알아보다니…. 순간 짜릿했다. 오랜 세월 혼자 짝사랑만 했는데, 갑자기 상대가 나를 바라봐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K-컬처의 열기를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K-POP을 시작으로 K-푸드, K-드라마 등 세계로 쭉쭉 뻗어나가는 우리나라 문화가 자랑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이들이 왜 한국 문화에 흥미를 느끼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찾아봤다. 그들이 K-컬처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선함 때문이었다. 서양 문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동양적이고 아기자기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좋다고 한다. 내 나라에서는 흔히 만나보기 힘든 이국적인 모습에서 큰 매력을 느끼나 보다.


  평소 주변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즐기는 순간 느껴지는 특별한 기분. 이 느낌이 좋아서 사람들은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려고 책을 펼치고 다양한 콘텐츠를 접한다. 니스의 해변 산책로를 걷던 중 나는 눈앞에 펼쳐진 보라색 꽃나무, 자카란다의 황홀한 모습에 발길을 멈췄다. 자카란다는 서리가 내리지 않는 난대 기후에서만 자라는 꽃나무라고 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인 꽃이다. 그래서 그 순간을 더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다. 커다란 나무에 보라색 종모양 꽃이 잔뜩 매달려 있었는데, 마치 그 꽃들이 경쾌한 종소리를 들려주듯이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렀다. 옆에는 K-POP을 틀어두고 댄스 영상을 찍는 프랑스 청소년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파란 지중해 바다와 한국 대중음악을 배경으로 댄스 영상을 만들다니,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것 같았다.


  서로에게 새롭고 독특한 경험을 선물해줄 수 있도록 우리도, 그들도 각자의 문화를 더 발전시키고 자연을 잘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문화와 환경을 나누며 얼마나 더 풍요로워질지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자카란다의 꽃말 ‘화사한 행복’처럼 모두의 마음에 보랏빛 행복이 주렁주렁 꽃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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