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선물세트 같은 너

반려견

by 플로리나

오늘도 우리 집 막내, 아리는 포근한 털로 내 발을 감싸며 온기를 전해준다. 내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존재이자 요즘 나와 제일 많이 대화하는 상대가 바로 막내, 반려견이다. 알사탕같이 커다란 눈망울을 한채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대면 내 마음도 같이 신나서 들썩거린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 예뻐!”, “아이고, 귀여워라!” 하고 외치게 만드는 나의 반려견 이야기를 쓰려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내가 얼마나 팔불출인지 다 들통이 날 것만 같다. 그래도 오늘은 우리 막내 자랑을 실컷 하고 싶다.


다음 달이면 강아지와 함께 지낸 지 꼬박 2년이 된다. 사실 난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맞벌이 부부에게 아이 하나 키우는 것만 해도 손이 부족한 순간이 많았다. 애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반려동물까지 키우는 건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강아지 타령을 할 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정 키우고 싶으면 스무 살 넘어서 독립하면 네 집에서 키우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데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어느 날 거실에서 혼자 놀고 있는 딸아이 모습이 유난히 외로워 보였다. 외동아이만 키우기로 한 걸 후회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형제자매가 없는 대신 내가 더 많이 사랑해주고 아껴주면 된다고 믿었다. 10년 동안 내 선택에 후회가 없었는데 그날따라 아이의 모습이 짠해 보였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강아지 사진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동물 사진이야 언제 봐도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그날은 유난히 아기 말티푸들의 모습이 눈에 쏙 들어왔다. 며칠 동안 출퇴근길에 나는 마치 내 강아지라도 되는 양 남의 집 강아지들 사진만 쳐다봤다.


연속 며칠간 강아지 사진만 봐서 그런지 꼬물꼬물 귀여운 모습이 눈앞에 아른아른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는 퇴근하자마자 얼른 저녁을 챙겨 먹고 아이랑 둘이 손잡고 애견센터에 구경하러 나섰다. 갑자기 들떠서 늦은 저녁에 집을 나서는 모녀의 뒷모습을 보며 남편은 걱정스러워했다. 강아지 키우는 일을 그렇게 성급하게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그냥 구경만 하고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아무래도 이날 일을 저지르고야 말 것이라는 걸 남편은 예감했나 보다.


애견 샵에 들어서는 순간 양쪽에 늘어선 수십 개의 케이지 안에서 새끼 강아지들이 깡총깡총 뛰고, 깽깽 짖고 난리였다. 순간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데 우리 딸은 샵에 들어서는 순간 어느 한 강아지만 쳐다보며 그 앞으로 걸어갔다.


“엄마, 나는 얘! 얘가 좋아.”


내 눈에는 다 똑같은 아기 강아지인데, 아이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결정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신중해야 하지 않겠냐며 주변을 좀 더 둘러보길 권했지만, 아이의 시선은 오직 한 군데 쏠려있었다. 강아지를 한번 안아볼 수 있는지 여쭤봤다. 샵 주인이 케이지에서 강아지를 꺼내 건네주자마자 아기 강아지는 딸아이 품으로 파고들었다. 언제 만나기라도 했던 사이처럼 친근하게 다가오는 강아지에게 아이는 온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오늘은 그냥 구경만 하는 거고, 집에 강아지 용품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 다음에 다시 오자고 이야기했지만 아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이가 첫눈에 반한 강아지인데, 혹여라도 나중에 다시 왔을 때 이 강아지가 없으면 어쩌나 싶어서 나도 망설여졌다. 보통은 큰 결정을 할 때 수십 번 고민하는 우유부단한 나도 이날은 신기할 정도로 빠른 결정을 내렸다. 추운 겨울 깜깜한 밤에 아이는 새끼 강아지를 품에 안고, 나는 강아지 용품을 두 손 가득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리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정신을 잃어 성급한 결정을 하고 나니, 밤새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과연 아이가 낮 시간에 혼자 강아지를 잘 케어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는 강아지 키우기에 관련된 지식을 평소에 꽤 많이 봐 두었나 보다. 나보다 훨씬 더 다양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강아지를 대할 때 얼마나 조심스럽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지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외동이라 사랑을 받을 줄만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강아지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아이의 다양한 면모를 보게 되었다. 쓸데없이 우려했던 나의 무거운 걱정 보따리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만큼 내 마음도 한결 가뿐해졌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강아지를 데리고 온 나의 결정에 남편은 화가 났었다. 그날 밤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 새 가족을 맞이하지도 않았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사랑스러운 강아지의 모습에 남편 역시 하루 만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올 때마다 격하게 환영 인사를 하는 강아지를 보며 남편은 저녁마다 함박웃음을 짓는다. 강아지를 키우기 전까지만 해도 남편은 혼자 방에서 영화나 미드를 보며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러던 남편이 요즘은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보낸다. 강아지랑 놀아주는 남편의 얼굴에는 매일 미소가 번진다. 아이 어릴 때 볼 수 있었던 딸바보 아빠 미소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한테 친근한 동생이 되어주고, 남편에게 귀여운 막내 역할을 하는 것만 해도 우리 집 반려견은 이미 100점 만점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나한테 충성스럽게 행동하는 걸 보면 나는 보너스 100만 점을 더 주고 싶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옆에 살갑게 다가와서 내 마음을 보드랍게 만져준다. 갑자기 조용하다 싶어 어디 있나 주위를 둘러보면 사랑스러운 눈빛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어떤 날은 우스깡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어서 나를 빵 터지게 만든다. 외출했다 돌아올 때면 현관문을 열기 전부터 내 발걸음을 알아듣고 문 앞에서 기다린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날 환영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는지 모른다. 슬슬 사춘기가 오려고 하는 딸한테 행여라도 내 마음이 상할까 봐 염려스러운지, 강아지는 온갖 애교로 나의 허전함을 채워준다. 가끔은 마음이 힘들어 혼자 눈물이라도 보이는 날이면 조용히 곁에 다가와 따스한 온기로 위로해준다.


나의 반려견은 이렇게 나에게 귀여운 막내가 되었다가, 의리 있는 친구가 되었다가, 어떤 날은 엄마처럼 포근하고 따스하게 날 감싸주기도 한다. 가끔은 혼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리는 혹시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가 보내주신 선물이 아닐까? 어릴 적 슈퍼에서 파는 커다란 선물 박스를 받는 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알록달록 요란한 포장 박스 안에는 각종 과자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달콤한 맛, 짭조름한 맛, 고소한 맛, 바삭한 스낵, 부드러운 쿠기가 한데 모여있는 걸 보면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아리를 볼 때마다 어릴 때 종합 선물세트를 받았던 기분이 떠오른다.


인생을 살면서 성급한 결정을 하면 그 일은 후회스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아리를 만난 그날만큼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내 인생 가장 초스피드로 내린 결정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이 녀석이 나의 운명이 될 거라는 느낌이 그날 강하게 전해졌나 보다. 아리가 우리 곁에 와줘서 매일매일이 감사하다. 그리고 강아지를 키우자고 줄기차게 나를 졸라대던 우리 딸, 수많은 강아지들 속에서도 운명처럼 아리를 찾아낸 딸아이한테 너무나도 고맙다.


우리 집 사랑둥이, 종합 선물세트 같은 아리야~ 내일도 모레도 우리 매일 같이 행복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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