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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Dec 01. 2022

수학을 취미로 즐길 수도 있지

거베라

  “그냥 학생들만 가르치면 안 돼? 괜히 특이한 시도 하지 말고….”


  취미로 수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성인에게 개인 지도를 하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만류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간섭하지 않는 남편인데 이날은 어깃장을 놓으려 했다. 그동안 나도 수학 수업은 학생들한테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야 밥벌이를 해야 하니까 이 나이까지도 수학 문제를 멀리할 수 없다. 간혹 성인 중에서 실무 능력 향상을 위해 수학적 사고 능력을 키우려고 공부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나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는 성인이 단순히 취미 생활로 수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성인 취미 수학 수업을 요청한 분은 생판 모르는 사람이다. 전문가와 의뢰인을 연결시켜주는 모바일 어플에서 알게 된 사람이다. 남편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랑 평범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혹여라도 특이한 사람을 만나서 아내가 마음을 다치는 일이 생길까 염려스러웠나 보다. 나도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동시에 궁금하기도 했다. 세상에 취미 생활로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다양한데, 왜 하필 수학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 어쩔 수 없어서 억지로 공부했던 과목이 수학 아니던가?


  “혹시 하시는 일이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직장에서 활용할 실무 능력을 위한 거라면 제가 거기에 맞춰 수업 커리큘럼을 짜 볼게요.”


  의뢰인에게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저는 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에요. 매일 답이 없는 일을 고민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하루 중 잠깐이라도 명확하게 답이 나오는 일에 몰두하고 싶어요. 그래서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했는데, 심화 문제는 잘 안 풀리더라고요.”


  의뢰인의 답변을 듣고 나니 그제야 이해가 됐다. 신기하기도 했다. 나와 정반대의 삶을 살고 계신 분이었다. 나는 항상 답을 내야 하는 일을 했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수학 문제 푸는 방법을 가르치거나, 데이터를 해석해서 ‘이 데이터셋의 의미는 이거다’ 하고 답을 내는 일을 했다. 그래서 나는 취미 생활로 답이 없는 활동을 즐긴다. 꽃꽂이가 나한테는 즐거운 취미 생활이자, 정해진 답을 내지 않아도 돼서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마음에 드는 꽃이 달라질 수 있고, 꽃들로 구성한 결과물의 모양도 달라질 수 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꽃꽂이를 하면 될 뿐,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꽃 디자인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만약 꽃꽂이로 경제 활동을 한다면? 내 취향이 아니라 고객의 취향에 맞춘 꽃꽂이를 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베스트라고 여겨지는 꽃다발이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1가지로 정해진 답이 있는 게 아니니, 다양한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여러 가지 방향으로 고민하고 연습해봐야 할 것이다.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의 입장도 비슷할 것 같았다. 아름다운 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일을 하는 게, 겉보기에는 참 매력적이다. 하지만 음악인들은 공연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마음이 불안하기도 할 것 같다. 나의 선곡이 지금 시기에 듣기 좋은 곡일까? 나의 연주기법이 이 곡의 매력을 어필하기에 알맞을까? 수많은 고민을 머릿속에 이고 살 것 같다. 그러니 일을 떠나 쉬는 시간만큼은 정해진 답이 있는 활동을 하고 싶을 수 있다. 문제를 풀어 정해진 답을 구했을 때 꽤 짜릿한 희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 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렴풋하게나마 공감이 돼서 나는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대학원생의 바쁜 스케줄을 고려해서 온라인 화상 수업으로 각자 집에서 시간이 될 때마다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온라인으로 수학 수업을 한다는 게 생각만큼 효율적인 일은 아니다. 배우는 사람이 적극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대면 수업에 비해서 효율성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나의 수강생은 본인이 원해서 수업을 요청했기 때문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하는 건 물론이고, 자기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체크해봐 달라며 직접 나에게 배운 내용을 설명해보기도 한다. 안 풀리던 문제를 풀어냈을 때는 뛸 뜻이 기뻐한다.


  “선생님, 이런 말씀드리면 제가 좀 우스워보일 수도 있는데요…. 저 지금 너무 행복해요.”


  하루는 수업 도중 수강생이 이런 말을 했다.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것만 해도 강사로서는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인데, 나랑 수업하는 시간이 행복하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수학이 나한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고 때로는 지겨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수학 문제를 풀면서 희열을 느끼는 학생의 모습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자, 감사 그 자체였다. 귀여운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도 뿌듯하지만, 수학 공부 그 자체를 즐기며 힐링하는 어른 수강생을 가르치는 건 더 뿌듯하다. 수학 공부가 삶에 활력소가 되고 유희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내가 모르던 미지의 세계를 하나씩 알아가는 쾌감은 우리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짜릿함은 단순히 즐거움의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해냈다는 성취감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전에는 잘 몰랐던 신비로운 경험을 원하나 보다. 도대체 왜 수학을 취미로 배울까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았던 수강생이 지금의 나에게는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감사한 의뢰인이자 동시에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게 해주는 성장 조력자이다.


  내가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다가 서서히 좋아하게 된 꽃이 있다. 바로 거베라다. 인위적인 모양 때문에 생화로서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거베라를 멀리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꽃이 주변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끌려가는 기분이다. 탐스럽고 존재감 있는 화형이라서 한 송이만 선물해도 충분하고, 다른 꽃들과 어우러져 꽃다발을 만들었을 때는 늘 중심 꽃이 되어 시선을 집중시킨다. 꽃 가운데 중심부의 작은 원형은 반지 같아서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완벽한 화형을 유지한 채 시선을 끄는 거베라의 꽃말은 수수께끼다. 생화 같기도 하고, 조화 같기도 한 거베라를 보면 늘 알쏭달쏭한 기분이 든다. 조각처럼 빚어놓은 듯한 모양 때문에 꽃시장에 가면 저거 혹시 조화인가 싶어서 가까이 가서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어쩌다 거베라를 한번 사서 꽃병에 꽂아두고 보니 2주 이상 자태를 유지하는 생명력 있는 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멀리하던 거베라는 어느 순간부터 애정 하는 꽃이 되었다.


  미지의 세계에 처음부터 선뜻 발을 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호기심 덕분에 한번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서서히 미지의 영역은 익숙함의 세계로 바뀌게 되고,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더 좋아하게 된다. 음악을 전공하느라 학창 시절 수학 공부에 소홀했던 수강생은 성인이 되어 수학 공부의 묘미를 알아가고 있다. 그녀의 호기심이 나중에는 익숙함과 자신감으로 바뀌는 그날까지 수학 공부를 즐길 수 있길 응원한다.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느라 고단했던 하루에 수학 문제의 답이 피로회복제가 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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