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초여름 밤의 미르강

by 화진


구름을 아래에 두고 파란 하늘을 위에 두고 물고기새 피스키볼라는 날개를 편 채 활공했다. 일말의 요동도 없이 조용하고 안정적이었다. 비늘과 깃털은 석양의 마지막 빛을 다채로운 빛으로 반사했다. 크기가 어찌나 거대한지 날개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이 아득해 보일 정도였다.


대화는 단절되었다. 무겁고 거북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버티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얼마 동안을 날고 있는지 어느 땅의 상공을 지나고 있는지 시스도 라무스도 전혀 알지 못했다.


딱 하나 붉게 물든 서쪽 하늘을 기준으로 삼아 피스키볼라가 북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번개 반도의 북서쪽이면, 미르강 부근인가? 라무스는 그렇게 가늠했지만 눈 아래로 보이는 건 어스름해져 가는 운해뿐이었다.


어둠이 짙어지고 피스키볼라가 부드럽게 활강하기 시작했다. 구름이 피스키볼라의 주위로 몰려들어 몸체를 완전히 가렸다. 마침내 피스키볼라가 멈춘 것은 밤이 내린 미르강 기슭의 초원이었다.


피스키볼라는 허공에 뜬 채로 한쪽 날개를 초원으로 내려 뻗었다. 라무스가 먼저 등지느러미를 떠나 날개를 미끄럼 타듯 타고 내려갔다.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시스도 땅으로 내려섰다.


“고맙습니다. 피스키볼라 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정중하게 허리 숙이며 인사했다. 피스키볼라가 커다란 머리를 돌려 그들을 보고 있었다. 우웅 하고 소리인지 진동인지 모를 느낌이 피스키볼라로부터 전해져 왔다.


‘사이좋게들 지내. 친구는 소중한 거야. 내가 잃어 봐서 잘 알지. 아주 까마득한 옛날 일인데도 아직 가슴이 아파.’


다투는 걸 듣고 있었구나. 피스키볼라의 등에서 티격태격했던 것이 부끄러워 라무스와 시스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둘 중 누구의 입에서도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 생각은 비슷하긴 했다. 친구는 무슨 얼어 죽을 친구!


다시 피스키볼라에게서 파동 같은 것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말이 아닌 리듬감 있는 소릿결이었다. 웃음…… 소리인가? 피스키볼라의 눈이 꼭 웃고 있는 눈 같았다.


‘강을 따라 상류 쪽으로 쭉 가.’


피스키볼라는 구름과 함께 떠올라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곧 구름이 남동쪽으로 밀려가고 맑은 밤하늘이 드러났다.


강물 흘러가는 소리가 맑고 잔잔했다. 풀과 꽃과 나무 냄새가 축축한 밤공기 속에 떠다녔다. 주위를 둘러보던 라무스는 계절의 변화를 깨달았다. 풀게트 관문을 넘기 전에는 분명 초봄이었는데 지금 미르강에는 초여름이 와 있었다. 옆에서 시스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번개 반도에 고작 몇 시간 정도 머물렀던 것 같은데 계절이 바뀌어 버렸잖아.”


혼잣말인 듯 꺼내 놓고는 시스가 라무스를 슬쩍 보았다.


“이제 어디로 가려고?”


잠시 틈을 두었다가 라무스가 물었다. 그녀가 타키툼의 프레케스 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은 자명했다.


“텔룸.”


레이디 앙켑세라의 집에 얼마간 머물 생각이었다. 시스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남은 일 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당신은?”


“우선은 루나리아로.”


라무스는 녹스 성채로 가서 네우테르에게 보고해야 했다. 레이디 나이아시스 글라키에사를 카푸로 데려가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고.


“그렇군. 이리로 계속 가면 어디가 나오지?”


역시 녹스 용병단 소속이었나 보군. 그런데, 말리티아에게 잡혀가던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건 어떻게 된 걸까?


“아마도 아침이 밝을 때쯤 남생이 여관에 도착할 것 같군.”


“남생이 여관? 여관과 정보의 수장 콤메르가 머무는 곳 말이야?”


어둠 속에서 시스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맞아.”


“사고 싶은 정보라도 있는 건가?”


“높은 값을 치르더라도 알고 싶은 거야 많지. 문제는 내가 사고 싶은 정보가 콤메르의 손안에 있느냐 없느냐지.”


내가 일 년 뒤에도 살아 있을 방법은 있는지. 프레케스 저택의 다피넬과 모데샤와 데세르는 어떻게 됐는지. 당신이 고래 산맥에서 나를 찾아낸 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래도 그게 우연은 아닌 것 같아서.


그리고…… 말리티아 때문에 문득 궁금해진 것, 나의 출신. 부모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그걸 알면 말리티아가 나를 납치하려던 까닭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콤메르가 정보의 값으로 무엇을 받는지 알고 있나?”


“금화나 보물 같은 거?”


모르는군. 라무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럼 뭔데?”


“정보. 얻으려는 정보와 무게가 비슷한 정보 말이야. 제대로 값진 정보는 그런 식으로만 거래가 이루어져.”


자신이 시스의 결혼에 관한 정보를 팔았던 것이 떠올라 라무스는 내심 가슴이 찔렸다. 그러나 시스의 눈에 비친 그는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녹스 용병단의 정예병은 감정을 숨기는 훈련도 철저히 받았다. 라무스는 그들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났다.


“그래? 쉽지 않은 조건이군.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콤메르와 거래해 본 적이 있나 보네?”


라무스는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콤메르와 사적으로 알고 지낸다는 것까지 발설할 마음은 없었다.


“거래한 적이 있구나, 있어. 그래서, 당신은 원하는 정보를 샀어?”


시스는 답을 듣지 못했다. 라무스는 입을 꾹 다문 채 앞을 가로막은 나무 둥치를 치웠다. 어두웠지만 주로 풀이 우거진 강가를 따라가는 건 그리 힘들지 않았다. 오르막이지만 경사도 완만한 편이었다. 두 사람은 이슬 젖은 풀을 헤치며 부지런히 걸었다.


동쪽 하늘이 발긋하게 변하고 어둠이 옅어지자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남생이 여관의 요리사가 아침 식사를 만들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저기 연기 오르는 데가 남생이 여관이야?”


들뜬 낯빛의 시스가 손을 들어 가리켰다.


“맞아.”


라무스가 짧게 대답했다. 어쩌면 콤메르가 강에 나와 새벽 낚시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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