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는 신중하게 숙고했다. 무슨 말을 해야 원하는 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만약 눈앞의 사내가 진짜 콤메르라면 시스는 그에게서 정보를 거래할 만하다는 신뢰를 얻어내야 했다. 그가 가짜라면 진짜 콤메르를 불러낼 말이 시스에게는 필요했다.
‘절호의 기회를 우물쭈물 횡설수설하다 날려 버릴 수는 없어. 나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아.’
아미쿠스는 어떤 재촉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줄곧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시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시스는 울퉁불퉁 불긋불긋 흉하게 부어 오른 얼굴을 하고 한쪽 눈은 부기 때문에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괴짜 같은 젊은 아가씨였다. 그리고 붓지 않은 눈 하나로 충분히 스스로를 설명하는 사람이었다. 그 눈에는 총기와 의지가 충만했다.
이윽고 마음을 정한 시스가 적당한 빠르기로 또박또박 말문을 열었다.
“타키툼의 프레케스 공작과 정략 결혼한 나이아시스 글라키에사는…….”
가벽 저편에서 듣고 있던 콤메르는 소리 없는 헛웃음을 흘렸다. 또 포르미두사의 공녀 나이아시스의 결혼 건이야? 안타깝지만 그 정보는 벌써 누군가가 나에게 팔았다고. 그 누군가는 라무스라는 이름의 녹스 용병이고.
“지난봄에 실종됐는데, 프레케스 저택에서 사라진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가 확실하게 알아요.”
시스의 말은 진솔했다. 그럴 수밖에. 그녀 자신에 대한 고백이니까. 시스가 내민 정보는 자기 자신의 신상이었다.
그녀는 믿었다. 세간의 온갖 비밀을 거래하는 콤메르라면 비밀 자체를 존중하고 고객을 보호할 거라고. 따라서 눈앞의 사내가 콤메르 자신이 아니더라도 콤메르가 내세운 대리인이라면 콤메르의 지침을 엄격히 준수할 거라고.
벽 뒤의 콤메르는 목소리의 주인을 만나볼 마음이 싹텄다. 그녀의 어조에는 거짓이나 협잡의 낌새가 전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가짜 신랑을 내세운 사기 결혼을 당한 나이아시스가 어떻게 사라졌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이 궁금증에는 최초에 그 사기 결혼에 대한 정보를 판 사람이 라무스였다는 사실도 꽤 영향을 미쳤다. 콤메르는 진즉부터 의혹을 품고 있었다. 라무스가 그 결혼에 연루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그렇다면 이 얼마나 흥미로운 상황인가.
“내가 원하는 정보를 말하기 전에 값부터 치르도록 할게요. 나이아시스 글라키에사는 남생이 여관에 있어요. 바로, 이 자리에.”
시스가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좀 우스꽝스러운 변장을 한 채로 말이에요. 여기, 엄청난 사건을 겪느라 빼 버리는 걸 잊은 결혼반지가 있네요.”
약간 자조적으로 말하면서 시스가 왼손을 들어 보였다. 약지에 프레케스 가의 문장인 기도하는 두 손이 정교하게 새겨진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대대로 프레케스 공작 부인에게 물려지는 유서 깊은 증표였다.
놀란 아미쿠스가 어쩔 줄을 모르고 ‘어, 어……’하는 사이에 방의 문이 벌컥 열렸다.
“주인어른!”
아미쿠스가 번개처럼 의자에서 일어나 문간으로 갔다.
“어, 그래. 자네는 이만 나가 보게. 수고했어.”
콤메르는 아미쿠스의 등을 두드려주고는 그를 내보냈다.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레이디 나이아시스. 제가 콤메르입니다. 가짜를 내세워 결례를 범한 점은 부디 너그러이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거짓 비밀을 들고 와서 장난을 치는 것들이 종종 있어서 말입니다.”
시스의 손을 낚아채 가서 손등에 입맞춤을 하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차린 콤메르가 너스레를 떨었다.
“이해합니다.”
잡혀 있던 손을 빼내며 시스가 콤메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세상 무엇보다 비밀을 탐한다고 알려진 사내는 예상 외로 평범한 중년의 용모였다. 다만 유들유들한 인상에 비해 눈이 습하고 형형했다.
“과연, 프레케스 가의 반지가 맞군요.”
감쪽같이 빼 간 금반지를 자세히 살피는 콤메르는 적잖이 즐거워 보였다. 시스는 자신의 왼손과 그의 손으로 넘어간 금반지를 번갈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머리를 갸웃했다. 그가 반지를 빼내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홀가분했다. 손도, 기분도.
“이런 이런. 존귀하신 레이디의 얼굴이……. 아하, 변장을 하셨다고 그러셨지요.”
반지를 돌려주면서 콤메르가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는 그녀의 원래 생김새를 상상해 보는 중이었다. 남다른 기상과 분위기를 지닌, 흔치 않은 미인이겠어.
콤메르는 오늘 하루는 식사를 하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이 풍성한 비밀의 냄새와 당차고 독특한 미인과의 시간이라니. 정보 매매상으로서의 보람과 쾌락이 어느 때보다 크고 깊게 느껴졌다.
콤메르는 벽장으로 가서 와인과 잔을 꺼냈다. 귀한 손님, 귀한 시간에 좋은 와인이 빠질 수 없지.
“나는 내 출생에 대해 알고 싶어요. 콤메르 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난 포르미두사의 쿠라토 공작의 양녀로 자랐어요. 나를 거기에 맡긴 사람들은 최초 사원의 대사제 클라비스 님과 라크리모 왕가 쪽이라고 들었습니다. 내 부모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정으로 포르미두사로 보내졌는지, 자세한 사정을 알려 줄 수 있나요?”
잡담으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는 시스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직 값을 덜 치르셨습니다. 프레케스 가에서 사라진 레이디 나이아시스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주셨지만 그녀가 어떻게 실종되었는지는 말씀을 안 하셨잖습니까?”
호기심과 기대에 가득 찬 눈동자를 굴리면서 콤메르는 와인이 담긴 잔 하나를 시스에게 내밀었다.
“그렇군요. 짧지 않고 짜증나는 사연이긴 하지만 얼마든지 들려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전에 대답해 주시죠. 내가 원하는 정보를 줄 수 있나요?”
와인으로 목을 축이면서 시스가 물었다. 향과 맛이 일품인 고급 와인은 부드러우면서도 자극적이었다. 시스는 느긋하게 그 느낌을 즐기면서도 긴장과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