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제대로 찾아오신 겁니다

by 화진


콤메르는 시스를 향해 와인 잔을 치켜들더니 단숨에 마셔 버렸다. 흡사 축배라도 드는 모양새였고, 그의 살집 좋은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 건이라면 정말이지 제대로 찾아오신 겁니다.”


묘한 미소를 띠고 한쪽 눈을 찌긋하는 콤메르를 시스는 이상한 기분으로 지켜보았다. 그녀는 자신을 대하는 정보상의 태도에서 뭐라 콕 집어 말하기는 힘든 위화감을 느꼈다. 다행히 불쾌하거나 꺼림칙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니 치르던 값이나 어서 마저 치러 주십시오.”


방금 비운 잔에 새로 와인을 채운 콤메르가 의자를 탁자에 바싹 당겨 앉았다.


“애초에 내가 원한 결혼은 아니었어요. 어리석게도 난 내가 어떤 식으로든 그 결혼을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고요.”


의자를 뒤로 살짝 물려 앉은 시스가 기구한 사연의 서두를 열었다. 그녀는 저간의 기구한 사연을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채로 담담하게 구술했다.


다만 몇 가지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말리티아가 말했던 피의 맛, 풀게트 관문, 번개 반도와 도채비족, 그리고 라무스에 대해 시스는 함구했다.


시스는 말리티아에게 끌려가던 중 고래 산맥 깊은 곳에서 탈출했다는 대목에서 이야기를 끝맺었다.


“사람을 살아 있는 인형으로 만드는 흑주술이라니…… 그런 무섭고 잔인한 흑주술이 아직 전승되고 있었다니 이거 정말 놀랍군요.”


콤메르는 시스가 들려준 선별적인 이야기에도 충분히 만족했다. 그는 고도의 흑주술과 그것을 구사할 수 있는 사악한 마가와 마구스가 이 시대에 실존하고 있다는 증언을 들은 것이다. 그것도 흑주술에 당했던 본인의 입에서 직접.


“그런데 그 말리티아라는 마가는 왜 레이디를 납치했답니까? 또, 말리티아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면서 탈출은 어떻게 하셨다는 겁니까?”


시스가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말리티아의 의도야 나도 모르죠. 하지만 그녀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 했는지는 알 것도 같아요.”


“웬투스 고원의 마물들의 폐허 말씀이십니까?”


그 말리티아라는 마가가 시스를 데리고 타키툼을 떠나 고래 산맥으로 들어갔다는 점, 거의 고래 산맥의 중심부 근처에서 시스가 도망쳤다고 한 점. 그 두 가지를 근거 삼아 콤메르가 추론했다. 시스가 의도한 바였다.


“만약 거기에 말리티아와 같은 부류가 모여 어떠한 모의를 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시스는 마물들의 폐허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곳에서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다면 그건 결국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환란의 싹일 터였다.


“그건 결코 좋은 쪽일 리가 없지요. 허어, 이거 이거 불길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요?”


“납치되어 거기로 끌려간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지도 몰라요. 나야 운 좋게 탈출했지만. 그래서 말인데 최초 신전에 익명으로 제보해 주셨으면 해요. 마물들의 폐허를 은밀히 조사해 보라고 말이에요.”


환란의 싹이라면 모양새를 갖춰 무성해지기 전에 잘라 없애는 것이 좋을 테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말리티아도 제거되겠지. 시스는 말리티아를 최초 신전에 고발해 달라던 꿈마녀의 부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말리티아가 제거되면 꿈마녀의 원한도 얼마간 달래지겠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말리티아인가 하는 마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인형 상태셨다면서 탈출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표정은, 반드시 들어야겠다는 표정이군요?”


“아니,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표정과 다른 말을 하면서 콤메르는 의뭉스럽게 웃었다.


“이 콤메르는 몹시 공정한 정보 매매상이라서 말입니다. 손님께서 값을 치르던 중에 감추는 부분이 있으면 그 값에 대한 정보를 내어드릴 때도 똑같이 한다, 뭐 그런 것이지요.”


“하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시스는 난처한 듯 한숨을 쉬었지만 이것마저도 계산된 행동이었다. 이제 약간의 거짓말을 보탤 차례였다. 시스는 처음부터 자신의 탈출을 어떤 식으로 납득시킬지 생각해 두었다.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느 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문의 존재가 나타났어요. 처음에는 불꽃인 것 같았는데 나중에는 사람과 비슷한 형상으로 아른거렸지요. 그 존재가 말리티아를 쫓아 버리고 나에게 걸린 흑주술을 풀어 주었어요. 그러고는 사라졌어요. 연기나 안개처럼 말이에요.”


케노와의 만남을 변주한 거짓말이었다.


“불꽃이라고요? 귀린의 불인가요?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고요? 그렇다면 귀린의 아이인가?”


흥미가 바짝 돋은 콤메르가 입맛을 다시며 와인 잔을 들었다.


“글쎄요. 말을 주고받지는 못했거든요. 아무튼 좀 의외군요. 직접 겪은 나 스스로도 생각할수록 믿기지 않는 일화를 그렇게 쉽게 믿어 주다니.”


역시 이름난 정보상이라서 그런가? 수집한 정보 중에 평범한 사람들은 짐작도 못할 신비한 것들도 제법 있었다는 건가? 시스는 내심 안도했다.


“마가의 흑주술을 풀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면 귀린의 아이는 아닐 수도 있겠어. 내가 아는 한 귀린의 아이가 그런 일을 했다는 기록이나 풍문은 없으니까. 그렇다면…… 고래 산맥은 깊고 험준하니까 요정이나 도채비족이 아직 남아 있었나? 아아, 이것 참…….”


혼잣말로 떠들어대던 콤메르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궁금해 미치겠다는 투였다.


시스는 그의 눈에서 드르륵 드르륵 눈동자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시스는 이해했다. 저 콤메르라는 인물이 정보 매매상이라는 특이한 업에 매진하는 까닭을. 비밀과 신비에 대한 그의 남다르고 유별난 호기심과 집착을.


“저어, 콤메르 님? 그만 진정하시고 제가 산 정보를 건네주시겠어요?”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시스가 자신의 와인 잔으로 콤메르의 와인 잔을 챙 소리가 나게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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