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메르는 혼자만의 생각에서 화들짝 빠져나왔다. 그는 자신을 빤히 응시하고 있는 시스를 향해 멋쩍게 웃었다.
“어이쿠, 실례했습니다. 이런 귀중한 정보는 실로 오래간만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푹 빠져들어서 그만 우스운 꼴을 보여드리고 말았습니다.”
흑주술에 마가에 인간과는 다른 신묘한 존재와의 조우라니. 콤메르에게는 이런 이야기야말로 천금보다 귀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었다. 정보 매매상으로서의 오랜 경험과 사람을 보는 안목과 무엇보다 콤메르의 직감이 시스의 말은 공허한 거짓이 아니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시스는 개의치 말라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어서 자신이 산 정보를 내놓으라고 집요한 눈빛으로 다그쳤다.
“십 년쯤 되었나? 한 여자가 남생이 여관에 와서 묵었습니다.”
와인 잔을 멀찍이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 앉은 콤메르가 차분하게 운을 뗐다. 시스는 살짝 빨라지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달리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조용히 방에 앉아 기도를 올리거나 미르 강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았고요. 그렇게 이레가 가고 열흘이 가고 보름 가까이를 두고 보자니 슬슬 불안해지더군요. 이러다 애먼 송장이나 치게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처음 올 때부터 병색이 완연했거든요.”
콤메르는 아미쿠스의 아내인 베니그를 시켜 여자를 떠나보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자는 지니고 있던 자신의 전 재산을 몽땅 내놓으면서 그 금액만큼 남생이 여관에 머물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인정스러운 베니그는 차마 여자를 내치지 못하고 금화와 보석을 콤메르에게 가져왔다.
“어쩔 수 없이 별채로 옮겨 계속 머물게 했지요. 그런데 하루는 아미쿠스가 난처한 기색으로 와서 보고를 하는 겁니다. 그 여자가 베니그에게 새벽의 여신의 사제님을 모셔다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잠깐만요. 한 가지만 먼저 확인할게요. 그 여자 손님은 나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거죠? 내 생각에는 나에 관한 정보를 판 사람이 그녀인 것 같은데. 맞나요?”
“뭐, 대강 그런 셈입니다.”
콤메르가 모호한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녀가 그에게 비밀을 판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이미 여자가 투숙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고,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추가 이쪽 세상보다 저세상으로 더 기울어 있었달까요. 기왕 그리 된 마당이니 어쩌겠습니까. 여자가 바라는 대로 아미쿠스를 루나리아로 보냈지요. 거기 신전의 사제님을 한 분 모셔 오라고.”
아미쿠스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녀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베니그에게 다시금 부탁했다. 지금 이 여관에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불러 줘요. 당연히 베니그는 콤메르를 불렀다.
여자는 평생을 목에 걸고 다니던 로켓을 야윈 손을 떨면서 겨우겨우 옷 속에서 꺼내 열었다. 그러고는 콤메르의 눈을 보며 수수한 청동 로켓에 새겨진 새벽의 여신을 가리켰다. 여신께 손을 얹고 맹세해 줘요. 지금 나에게서 듣게 될 얘기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발설하겠다고.
“그러니까 나에 대한 비밀은 사고판 게 아니었던 거군요? 누군가의 마지막 유언이었어.”
뒤의 말은 시스 자신에게 읊조린 것이었다. 솔직히 시스는 기뻤다. 아직은 누구인지 모르는 그 여자 손님이 자신의 신상에 관한 비밀을 팔았던 것이 아니라 ‘고백’했다는 것이. 그 비밀을 거래의 품목 따위로 취급하지 않고 소중히 여겨준 것 같아서.
“예. 그리고 그녀가 지정했던, 그녀의 유언을 들을 자격을 갖춘 단 한 사람이 지금 제 앞에 있지요. 레이디 나이아시스 글라키에사. 부모에게서 나지 않은 사람.”
‘부모에게서 나지 않은’이라는 말을 할 때 콤메르는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냈다.
“부모에게서 나지 않은, 이라. 제법 재미있는 표현이군요. 그렇긴 하죠. 내 부모님은 양부모였으니까.”
씁쓸해 하는 시스를 향해 콤메르는 느리고 크게 한 번 머리를 저었다.
“그 말은, 그러니까 그 말은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말일 겁니다. 하여튼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그 여자 손님은 자신의 이름이 파르티케라고 했습니다. 그걸 듣는 순간 이 콤메르는 너무 놀란 나머지 의자에서 나동그라질 뻔했지 뭡니까.”
“아는 이름이었던 건가요?”
“들어는 본 이름이었지요. 떠도는 풍문에서요.”
“어떤 풍문이었나요?”
“파르티케라는 시녀가 모시던 주인을 죽이고 자취를 감췄다는 살벌한 풍문이었습니다.”
시스는 그만 울적해졌다. 자신에 대한 비밀을 쥐고 있었던 여자가 배신자에 살인자라니. 풍문 정도가 아니었다. 추문도 이런 추문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풍문은 풍문이지요. 그리고 파르티케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 풍문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콤메르가 보기에도 그녀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아니었고요.”
콤메르는 회상에 젖어 눈을 가늘게 뜬 채 부연했다. 파르티케에 대한 그의 믿음이 시스의 가슴 깊은 곳에서 소리 없이 요동치던 감정을 눅여 주었다.
“파르티케는 미세르코르디아 공주의 시녀였습니다. 미세르 공주는 현 페르베아투 국왕인 아바루스에게는 고모가 되는 분이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페르베아투의 라크리모 왕가로 이어지는 건가. 시스는 자신을 한껏 방치해 두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강제하려 들던 아바루스 왕의 행태를 떠올렸다. 입맛이 썼다.
콤메르의 말 속에서 미세르코르디아 공주가 과거의 인물로 표현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파르티케를 둘러싼 풍문 속 죽은 주인이 바로 그녀 미세르 공주였구나. 그렇다면 만나볼 수는 없구나. 진한 아쉬움에 마음이 허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