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디위나의 경고

by 화진


“검으로는 죽일 수가 없다는군요.”


지난밤 디위나가 한 말이었다.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것 같은데.”


선 채로 서성이는 디위나에게 의자를 갖다 놓아주며 라무스는 일축했다. 그녀의 말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그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검의 일격을 치명적인 급소에 맞은 인간은 다 죽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허황되게 들리겠지만 거의 정확한 사실일 겁니다.”


“방금 한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할멈의 예지력은? 예언은? 이제 와 그 예언이 빗나갈 거라는 얘긴가요?”


“아니오. 그건 아닙니다. 이 할멈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경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실 겁니다. 제가 뛰어난 예언가인 비결이 있으니까요.”


의자에 앉지는 않고 손을 짚고 기대어 선 디위나가 라무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는 예지하는 것을 다 예언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봐 가면서 예언하지요. 아직 오지 않은 앞날이라는 것에는 언제나 가능성이 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리 보았던 대로 되거나, 본 대로 되지 않거나.”


“그렇다면 할멈이 보았던 앞날을 실현해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예언을 들려준다는 건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영민한 할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라무스는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맞습니다. 그래서, 용한 예언가에게 진실로 중요한 건 앞날을 보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안목이라는 게 이 예언가 할멈의 지론입니다. 저는 경의 잠재력을 제대로 보았다고 확신합니다. 아까 레이디 페르비아를 피하면서 재채기를 하셨지요? 진짜 재채기였지만, 그건 그 전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슬쩍 손에 쥐고 있던 머리카락으로 콧속을 간질이셨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라무스의 눈매가 멋쩍은 웃음기로 살짝 누그러졌다.


“들키다니. 할멈 눈이 엄청 예리한가 보오.”


“제대로 봤던 게 아니라, 경의 행동을 토대로 추측한 것입니다.”


“그렇군. 자,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일의 내 결투 상대를 검으로 죽일 수 없다 치고, 그걸 할멈이 어찌 알게 된 거요?”


“웨스파에게 들었지요. 여기 로스 레갈리스의 허드렛일 중에서도 험하고 천한 것을 처리하는 자입니다. 말하자면 훈련장에서 불의의 사망자가 나온다든지 했을 때 시신을 왕궁 바깥으로 내가는 일 같은 그런 것들요.”


시신이라는 낱말이 가슴에 쿡 박혔다. 라무스는 눈빛으로 다음 말을 재촉했다.


“최근 훈련장에서 죽은 병사의 시신을 세 구나 옮겼다고 하더군요. 두 구를 처리하고 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훈련장을 몰래 훔쳐봤다고 합니다. 얼굴을 가린 기사는 아무런 보호 장구도 없이 싸우는데 심장에 검을 맞고도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세 번째 시신을 내가게 되었고.”


디위나는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웨스파가 전해준 상황과 함께 그가 느꼈던 기묘한 공포도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 미지의 공포감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디위나의 마음속에 되살아났던 것이다.


“웨스파라는 자가 잘못 봤을 가능성은 없다는 거죠?”


라무스가 묻자 디위나가 굳은 눈빛으로 부인했다.


“저도 그렇게 다그쳐 물어 봤는데, 절대 잘못 본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기사가 보통의 사람과는 묘하게 달라 보였다고 말하는 웨스파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지요.”


“묘하게 다르다면……?”


“감정이 없어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등줄기가 서늘했다고 합니다.”


“다 믿자니 믿기지가 않고, 안 믿기에는 할멈의 기색이 너무 진실하고. 더구나 할멈은 에언가로서나 페르비아의 측근으로서나 내가 그 이상한 기사를 이기기를 바랄 테니 헛된 정보를 줄 까닭은 전혀 없고 말이죠.”


자리에서 일어난 라무스가 자신의 검집을 들어 검을 뽑아서는 촛불의 빛에 비추어 보았다. 잘 벼려 놓은 날이 푸르스름하니 차갑게 번들거렸다.


“그 기사가 검으로 죽지 않는 것으로 보였던 건…… 혹시 흑주술 때문일까요? 할멈 생각은 어때요?”


“예. 실은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서 함부로 입에 올릴 수가 없었지요.”


“방법은, 있나요?”


“안타깝게도, 이 할멈과 같은 보통의 백주술사로서는 흑주술을 깰 재간이나 능력이 없습니다. 저쪽이 흑주술로 무장했음을 경고해드리는 것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경은 우리 같은 것들과 달리 비범한 분이시니까요. 반드시 스스로 해법을 찾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스스로 해법을 찾으라니. 나는 주술사도 아니고, 여지껏 검으로 죽일 수 없는 자를 상대해 본 적도 없…….”


라무스는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닫았다.


검으로 죽일 수 없는 자를 상대해 본 적이 있었음이 기억났다. 풀게트 반도의 검은 기사. 기억해내고 나니 더 막막해지는 기분이었다. 검은 기사는 곧 자기 자신이었기에 애초에 패배만이 가능한 싸움이었다. 불새 페로가 아니었다면 라무스는 거기에서 죽었을 터였다.


“그건 그렇고. 그 기사는 아바루스 왕이 천거했다던데, 왕께 고해야 하는 거 아니오?”


“절 떠보시는 거군요. 저는 경을 진심으로 염려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 흑주술의 기사는 아바루스 전하의 뜻일 겁니다.”


“할멈의 배포가 예사롭지 않군요. 여신의 이름으로 금기하고 있는 흑주술을 왕께서 몰래 이용하고 계신다는 말을 하다니.”


몹시 위험한 주장이었다. 흑주술은 티토니아의 금기였다. 흑주술을 쓰는 것은 최초 신전과 정면으로 맞서는 행위였고, 그에 대한 최초 신전의 처분은 단 하나였다. 발본색원.


“지금으로서는 그리 보이니까요. 확실한 건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간밤의 일을 떠올리던 라무스는 코르푸스가 꽤 오래 숨을 고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 자는 숨을 고르는 게 아니었어. 기다리는 거야. 내 검을. 그러고 보니 코르푸스와 주고받았던 공격의 형태가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저 자는 내 움직임을 그대로 본뜬 공격을 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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