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를 따라 시스의 고개가 돌아갔다. 돌아간 시스의 시선이 페로를 따라 멈추었다. 라무스의 어깨 위에서. 시스는 보일 듯 말 듯한 눈웃음을 매달고 턱을 한 번 끄덕였다. 돌아왔으니 됐어. 건강해 보이니 됐어. 그것으로 충분해.
본디 제멋대로인 새였다. 시스는 자신이 페로의 주인이라고 여긴 적이 없었다. 페로는 누구와도 종속의 관계로 묶일 생명이 아니었다. 막연히 느끼고 있던 것을 시스가 확실히 깨달은 것은 풀게트 관문에서 페로의 참된 정체를 보았을 때였다.
페로의 진짜 모습은 불새였다. 불새는 전설의 신조였다. 완전하게 자유롭고 온전하게 주체적인 존재.
시스는 티티아에게 이끌려 연회장으로 향했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라무스도 거처로 가기 위해 발길을 뗐다. 잊고 있었던 두 군데의 상처가 욱신대기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페로는 그의 오른쪽 어깨에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새의 몸이 닿은 귓가와 목덜미가 따뜻했다.
“할멈이 왜 여기에……?”
방문을 열고 한 발을 안으로 디디던 라무스가 멈춰 섰다. 디위나 할멈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본 페로는 푸르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저는 약제사이기도 합니다. 이쪽으로 오셔서 상처를 보여주십시오.”
티토니아에서 약제사가 되는 길은 둘이었다. 하나는 오티움에서 약제학을 공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약제사의 제자가 되어 배우는 것이었다. 문제는 뛰어난 약제사가 되는 건 둘 중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어렵다는 것이었다.
“치명상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곳에 난 상처도 아니니 내가 직접 처치할 수 있다오. 약 상자만 좀 빌려 주시오.”
녹스 용병단에서는 병사들에게 가벼운 부상에 대한 처치도 가르친다. 유사시에 스스로를 혹은 동료를 돌볼 수 있게끔.
“이 늙은이를 못 믿으시는 것만 아니라면 맡겨 주셨으면 합니다.”
“레이디 페르비아가 보냈소?”
“아직은 레이디께서는 모르시는 일입니다. 이 늙은이 자의로 온 것이니까요.”
지금쯤 페르비아는 티티아 왕비가 주최한 파티에서 청년들의 찬사와 아첨을 즐기고 있으리라. 페르비아의 약혼이 공식적으로 파기되는 장면을 목격한 독신 귀족들에게 그녀는 몹시 매력적인 목표일 테니까.
“자, 이리 앉으십시오.”
디위나 할멈이 의자를 내밀었다. 라무스가 앉자 디위나는 가위를 들어 윗옷을 잘랐다. 라무스의 벗은 상체가 완전히 드러나자 디위나는 놀란 숨을 삼켰다. 오늘 입은 상처 말고도 흉터가 많았다. 검에 의한 것, 화살에 맞은 흔적으로 추정되는 것, 화상으로 보이는 것 등등.
“꽤 아플 겁니다.”
약에 적신 천으로 상처를 닦아내기 전에 디위나가 말했다. 그녀의 손길이 상처에 닿는 순간 라무스의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꽤 아픈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아팠다. 그러나 라무스는 어금니를 꽉 문 채 조용히 참았다.
어깨와 옆구리의 상처를 닦은 각각의 천을 두 개의 그릇에 담긴 약물에 넣은 디위나가 치료약이 담긴 약병을 꺼내 상처에 약을 뿌렸다. 액체로 된 것을 뿌리고 그 위에 가루로 된 것을 덧뿌렸다. 그러고는 붕대로 상처를 감싸 고정했다. 능숙한 솜씨였다.
“다행히 그 자의 검에 독을 묻어 있지는 않았네요.”
두 개의 그릇을 들여다보던 디위나가 마음이 놓인다는 듯 숨을 길게 내쉬며 옆의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고맙소. 디위나 할멈.”
아픔을 참으며 웃옷을 찾아 입은 라무스가 인사를 차렸다. 약이 스며들면서 고통은 더욱 날카롭고 선명해졌다.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별 것 아닙니다. 마음 쓰지 마십시오.”
디위나가 약 상자에서 자그마한 가죽 부대를 꺼내서 내밀었다.
“드십시오. 약초를 넣어 발효시킨 와인입니다. 통증을 완화시켜 줄 겁니다.”
마개를 열자 포도 향과 함께 독특한 향이 올라왔다. 라무스는 고개를 젖히고 몇 모금을 목구멍으로 떨어뜨려 삼켰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단 말이오. 할멈이 왜 나에게 신경을 쓰고 친절을 베푸는지. 그런데 또, 그저 누구한테든 과하게 친절하게 구는 단순하고 오지랖 넓은 노인으로는 보이지 않거든.”
라무스가 가죽부대를 돌려주자 디위나도 두어 모금을 마셨다. 긴장으로 굳어졌던 목과 어깨가 조금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저는 예언하는 자입니다. 경을, 아니, 공을 처음 뵈었을 때 제가 본 미래가 있습니다. 그 미래가 실제의 현실로 구현된다면 공께서는 제가 본 대로 ‘그분’이 맞으신 것입니다. 하지만,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 미래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얽히고설킨 수많은 환경과 사람과 선택에 따라 달라집니다. 운명도 마찬가지지요. 제가 보았던 미래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디위나는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지혜를 갖춘 사람이었다.
라무스는 그녀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쪽을? 라무스 유바론이라는 사실을? 피리 부는 자임을? 아니면 둘 다인가? 구태여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디위나 할멈이 발설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 미래가 어떤 것인지는 알려줄 뜻이 없는 모양이오. 그렇지 않소?”
“그렇습니다. 실은 그 미래의 예시가 참다운 예시인지 아니면 망령된 환시인지 이 늙은이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제가 확신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본 미래가 실현되든 다른 형태의 미래가 펼쳐지든 그 어떤 경우에도 공께서는 이 세상에 해악을 끼칠 분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공을 돕는 것입니다.”
약초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신 디위나가 치료에 썼던 약과 물품들을 주섬주섬 챙겨 약 상자에 담았다.
“내일 아침에 다시 상처를 봐 드리러 오겠습니다.”
디위나가 나가고 혼자가 된 라무스는 침대로 옮겨 앉았다.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나른함과 졸음이 달콤하고도 둔중하게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