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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새벽 Oct 31. 2024

7주간 매일 1권씩 읽으면 일어나는 일

여리고성이 무너지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 사놓고 읽지 않아서 쌓아둔 책들이 주방 한편에 탑을 이루고 있다. 주방과 가까운 곳의 식탁 한 모퉁이가 내 서재다. 읽고 싶은 욕심이 앞서 늘 이것저것 빌려오지만 읽는 속도는 욕심을 따라가지 못한다. 얼른 읽어치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말이다.


 그러던 중 성경 한 구절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수 6:3)

 교회 좀 다녀봤다면 낯선 구절은 아닐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여리고성을 바라보며 섰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라고, 그저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엿새동안 돌라고. 여리고 전투를 앞두고 주님이 주신 전략이란 것이 이렇다.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방법이다.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전혀 맥락이 맞지 않는 적용 하나가 떠올랐다. 6일 동안 매일 책 1권씩 읽으면 어떻게 될까.


 주방 한편에 탑을 이루고 있던 책의 권수를 찬찬히 세어보았다. 천천히 읽어야 할 책 몇 권을 제외하고는 정확히 서른여섯 권이다. 서른여섯 권이라면 1주에 6일씩 6주 동안 매일 책 1권씩 읽어볼까 라는 단순한 계산이 떠올랐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특별한 날로부터 날 수를 세어보았을 때 21일 전? 그럼 21일 동안 작정하고 기도해볼까? 이런 계산이 몸에 밴 사람이다.


 그런데 일곱째 날 일곱 바퀴를 돌라는 말씀을 깜빡했다. 그럼 일곱번째주에 일곱 권을 더 읽을까. 계산해 보면 서른여섯 권에 일곱 권을 더하면 마흔세 권이다. 아까 천천히 읽을 요량으로 빼놓은 책이 일곱 권임을 확인했을 때에는 어라, 이건 뭐지? 싶어 진다. 얼떨결에 7주간 하루 한 권씩 읽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7주간 마흔세 권을 읽으면 뭐가 달라질까 싶다. 독서법에 관한 책을 한참 즐겨 읽던 때가 있다. 지금도 독서법, 독서에 대한 책이라면 무조건 빌려올 정도니 그 관심은 아직도 지대하다. 그중에서 음악 듣듯이 책을 흘려 읽으라고 권하던 책이 꽤 인상적이었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아들에게 조언했던 독서법과 어떤 면에서 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귀하고 남길만한 내용 중심으로 훑어 읽는다는 면에서 말이다. 7주간 매일 한 권씩 그렇게 읽게 될 것 같다. 세 아이를 홈스쿨로 돌보는 일상에서 책을 읽을 틈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니 미리 변명을 하자면 정독, 통독은 불가능할 듯하고 읽어제끼는 책들로 7주간을 채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렇게 7주간 마흔세 권을 읽으면 뭐가 달라질까. 일천 권을 읽었다는 저자의 책도 읽어보았고 겨우 7주가 아니라 3-4년을 넘게 일주일에 4-5권을 읽어냈다는 저자의 책도 읽어보았다. 그런 분들이 그렇게 읽어보았더니 이렇더라 하는 내용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고작 7주 만에 그런 썰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내게 주님이 주신 마음은 반대의 것이다.


 여리고 전투에 비유하신 주님의 마음은 내 안에 여리고성과 같은 견고한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그 기초를 다시는 쌓지도 못하도록 완전한 승리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내 안에 어떤 여리고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단지 내 안의 인본주의의 그림자들이 완전히 벗어지게 해달라고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일지도 모르겠다고 어렴풋이 추측할 뿐. 독서라는 것이 신앙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지 알려주시고 정렬시켜 주실지도 모르겠다. 책을 그렇게 읽어댔더니 인생을 살아갈 힘과 지혜가 생겼어요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의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맥락이다.


 책을 너무 좋아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성경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있었다. 성경 읽을 시간에 책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율법적인 생각에서 나온 의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독서에 대한 입장을 주 안에서 정리하고 싶었다. 또 한편으로는 성경도 읽고 책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기도 했다. 몇 년을 이 책, 저 책을 파보았지만 독서를 해야 할, 내 마음을 온전히 때리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렇지 하고 온전히 수긍되는 이유를 말이다. 어쩌면 7주간의 여정을 통해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는 것과 같이 그 모든 의문이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독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목소리를 조금 낼 수 있게 되진 않을까 기대되기도 한다. 7주간의 여정에 한걸음 내디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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