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한 구절
올해는 내게 터닝포인트와 같은 일이 일어난 해이다.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요가, 필라테스, 헬스 등 운동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운동을 다니면서도 뭔가 드디어 운동을 하게 되다니, 라든지 운동이 너무 좋아! 같은 느낌은 없었다. 돈이 아까우니 어찌 됐든 울며 겨자먹기로 꾸역꾸역 기간을 채운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기꺼운 마음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기껏해야 동네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 정도의 운동이지만 내 몸에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매일 든다.
운동 좋아! 의 마음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인터넷에서 걷기와 조깅에 대해서 검색, 도서관에서 달리기에 대한 책을 빌려보기까지 이른다. 그중 “마녀체력”을 읽고 운동 너무 좋아!로 최고조를 찍었다. ‘마녀체력’을 읽다가 책 속에서 소개된 책으로 “나를 부르는 숲”을 오늘은 훌훌 넘겨보았다. 워낙 유쾌한 작가인지라 재미있는 대목이 많았지만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가르쳐준 한 가지, 삶에서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쁨을 정말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대목에서 한참을 멈춰서있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가르쳐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우리 둘 다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환희를 정말 행복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나는 삶을 그렇게 대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셋이 될 때까지 결혼 전과 비교하면 결핍의 연속선을 걷고 있는 듯하다. 내 시간이 부족하고 재정의 압박에, 오랜만에 받은 건강검진에서는 ‘녹내장 의증’이라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자꾸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황을 주신 뜻을 구하고 찾아본다. 주신 환경들이 낮은 수준의 환경일지라도 나를 사랑하시는 분의 손에서 온 것이라면! 이런 생각에 이를 때 마음이 역전되는 기쁨이 있다.
삶의 조건이 열악할 때 배우게 되는 삶의 태도가 있다. 작은 것에 만족한다는 것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와 같은 비굴한 감사가 아니다. 작기 때문에 오는 참 만족이 있다. 세 아이를 홈스쿨로 키우면서 개인 시간이 참 부족하지만 그 와중에 주어지는 짧은 시간은 결혼 전의 흘러넘치던 개인시간보다 더 질 높은 만족감을 준다. 재정적인 부분도 그러하다. 결혼 전에는 번 돈을 온전히 혼자 쓰던 것이 홈스쿨을 하며 외벌이 신랑의 수입에 기대어 알뜰하게 써야 하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그러함에도 살아지는 지혜, 미니멀하게 살림을 꾸리는 재미로부터 오는 행복감이 있다. 대체될 수 없는 행복감이다. 건강에서도 그러하리라고, 건강이 더 안 좋아져도 허락하신 건강을 누리는 기쁨을 배우게 하시려나보다. 그분의 손에서 온 것이라면 모든 것이 선하다고 신뢰할 수 있다. 빌 브라이슨에게 ‘나를 부르는 숲’이 있다면 나에게는 ‘나를 부르는 광야’가 있다. 숲에서만 배우는 것을 찾으러 숲의 부름에 응답하듯 인생의 광야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을 구하기 위해 광야로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