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초코칩 쿠키가 너무 먹고 싶어.”
첫째 아이가 저녁 먹을 시간이 다돼서 과자 타령이다. 저녁 먹고 나서 먹겠다 그런다. 보통 저녁식사 후에는 간식을 잘 안 먹는데 심지어 초코라니. 내일 사러 가자고 했다. 떼를 쓰진 않지만 집념이 강한 첫째는 그러면 집에 사둔 재료로 쿠키를 만들어 달라, 뭐를 해달라. 포기하지 않는다. 너무 피곤한 하루였고 저녁 줌모임까지 있어서 도저히 저녁 먹고 쿠키까지 만들어 대령하기에는 무리였다. 심지어 신랑은 야간근무를 나가서 오롯이 혼자 할 일들이다.
첫째의 군것질 타령을 막아내고, 둘째가 아랫집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와서 놀겠다는 것까지 방어해 낸 후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저녁식사까지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고 첫째가 너무 배고파해서 고기반찬을 따로 만들어 대령했다. 배를 채우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니 그냥 군것질거리를 사줄까 싶은 너그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저녁 산책 겸 혼자 편의점으로 향했다.
과자 하나로 셋이서 나눠먹게 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입이 셋인데 싶어 다른 종류로 하나 더 챙겼다. 첫째가 사달라던 초코칩과 무난하게 연두과자 한팩.
“와, 이거 우리 어렸을 때 많이 먹었던 과잔데!”
집에 왔더니 둘째가 연두과자를 보며 너무 좋아한다. 사실 연두과자는 어렸을 때 아이들이 잘 먹었던 과자가 아니고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엄마인 내가 잘 먹었던 간식이다. 둘째는 잘 먹지도 않았다. 어렸을 때 많이 본 기억이 자주 먹었던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나 보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모습이 흐뭇하다.
나는 순종을 잘하는 사람인 줄 평생 그렇게 알고 살았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며 알아가는 내 모습은 고집이 센 사람이다. 아이들에게 이건 안돼, 저건 이래서 안돼, 금지사항이 끝도 없다. 아이들 고집보다 엄마 고집이 더 세서 강행되는 것도 많다. 그런데 주의 은혜의 순간은 항상 둘째 아이를 통해 엄마 고집이 꺾이는 순간이다. 그 유익이 오늘은 첫째 아이에게까지 흘러갔다. 내 고집대로 되지 않아도, 오히려 내 고집이 꺾일 때 주님이 일하심을 확인한다.
저녁의 간식시간에 아이들이 갖고 있는 추억 한켠을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그 장면을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엄마가 자주 먹던 과자가 아이들에게도 추억의 과자였나보다. 직접 편의점에 데려갔으면 고르느라 한참이었을 둘째는 엄마가 마음대로 골라온 과자 하나에 추억 하나 꺼내놓고 행복해한다. 이런 시간들로 가족이 끈끈해지고 서로를 향한 사랑이 더 커지는 것 같다. 강하고만 싶은 엄마가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약해질 때 역설적으로 강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약하게 하실 때는 흔쾌히 낮아져야 한다. 고집부릴 때가 아니다.
100일간 매일 글쓰기를 결심했다. 얼마나 되었나 세어보니 겨우 열흘 정도 된 것 같다. 처음으로 뭘 써야 하나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제는 아이들과 투닥거린 일도, 특별한 일도 없는 것 같아 정말 한참을 기다린 것 같다. 아주 조금 따뜻했던 장면 하나를 꺼내 두서없이 써내려가는데 하나님이 어제의 하루 가운데 숨겨두신 햇살 한 조각이었나보다.
넘어서지 못하는 문제가 있을 때는 자세를 낮춰야 한다. ‘딸아, 자세를 낮춰야 넘어갈 수 있단다. 넘어가는 방법은 더 낮아지는 거야. 그때 더 높이 뛸 수 있단다.’ 하고 아이들과의 장면에서 아버지께서 말을 걸어오셨던 것 같다. 몸을 낮추자 주께서 내리쬐어 주신 햇살이 온몸을 온전히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