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걷는 기쁨

by 푸른새벽

막내가 아직 어려 유모차를 타던 때 온 가족이 파주의 덕진산성을 오른 날이었다. 조금 덥지만 온통 푸릇푸릇했다.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오르는 길이었다. 그렇게 높지 않은 언덕이었는데도 경사가 급해지자 유모차를 두고 가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 유모차를 갈림길에 세워두고 막내를 안고 조금 더 올랐다. 한 바퀴를 돌고 내려오는데 아까 세워둔 유모차를 만났다. 어려운 길은 아니었지만 초행길이라 여기가 아까 거기였나 싶고 헷갈리던 차였다. 그런 차에 만난 유모차라 마치 이정표 같은 느낌이었다.


그날 ‘이정표가 있는 길’이라는 글 하나를 썼다. 브런치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그리고 홈스쿨링 왜 하냐는 질문에 아이와의 ‘관계’ 때문이라고 글을 썼다. ‘아이와의 관계’를 내가 이 길을 잘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정표로 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브런치는 쓰다 말다 하다 다시 쓰기 시작했다. 글로 옮길 때만 보이는 것이 있듯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자 아이들과의 일상도 더 소중해졌다.



다시 글을 올리며 당당하게 ‘예수동행육아’라고 매거진의 이름을 내걸었지만 주님은 단박에 ‘동행이 뭐라고 생각하니?’라고 물어오신다.


“그때에 그와 동행한 사람은 부로의 아들로서, 베뢰아 사람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가운데서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 그리고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였다.” (행 20:4)


바울의 전도여행에 바울과 동행한 사람들의 이름을 주님께서 명확히 나열하신다. '이런 게 동행이란다.' 하고 말씀해 오시는 것 같다. 내가 걷는 길에 주님을 동반하는 것을 동행으로 착각하며 살아왔다. ‘주님, 저 이 일 할테니까 동행해주세요. 주님 지금부터 이렇게 할 거예요. 동행해주세요.’ 이런 식이다.


진짜 동행은 주님이 날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주님 어디 계시지? 어디로 향하고 계시지? 묻는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것이 ‘따라가는 자‘의 일상일 것이다. 주님의 길을 주님께서 걸으실 때 나는 그 길의 방향을 알든 모르든 주님이 계신 곳으로, 주님 곁을 따라 걷는 것.



홈스쿨링의 일상 가운데 나는 얼마나 주님 따라 걷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가 하는 홈스쿨링은 아이들에게 ‘안돼’를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늘 아쉬워 함께 하는 시간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나름 열심히 길을 걷고 있지만 주님이 계신 곳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이미 이정표는 ‘그 길 아님’, ‘그쪽으로 가는 거 아님’을 외치고 있는데 다른 방향으로 열심히 걸어왔던 것 같다.


금요철야예배 갈 준비를 하는 저녁, 식사도 마쳐야 하고 준비할 일이 많아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막내가 젠가를 같이 하자 그런다. 주님이 여기 계신가 싶어 털썩 앉아서 젠가를 한다. 옆에서 둘째와 놀고 있던 첫째가 자기도 엄마와 젠가를 하고 싶어서 엉덩이를 들썩인다. 막내와의 시간이 끝나고 얼른 저녁을 먹으려는데 첫째가 갑자기 울음바람이다. 자기도 엄마랑 젠가 하려고 기다렸는데 밥 먹자는 바람에 울음이 터진 것이다. 평소 같으면 울든 말든 조급한 마음에 그냥 밀어붙였을 텐데 저녁 먹고 얼른 하자고 달랬다. 그렇게 식기도를 하는데 주님 여기 계시는군요 하는 마음에 울컥한다. 네가 걷고 싶은 길 말고 내 길 걷자, 하고 말을 걸어오시는 것만 같았다.


홈스쿨링을 하면 뭔가 풍성하게 아이들과 여기저기 다니며 열심히 이것저것 하는 일상을 은연중에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저런 공동체에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들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주님이 걷자고 하시는 주님의 길은 의외로 소박해 보이는 길이다. 같이 동네를 산책하고, 틈틈이 같이 놀기도 하고, 먹고 싶다는 음식을 휘뚜루마뚜루 만들어주면 맛이 어떻든 엄마요리가 최고라고 하는 아이들과 눈 한번 더 마주치는 것. 어려워서 걷지 못했던 길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아서 걷기 어려웠던 길이다.



내가 책임지는 길이 아니라 그저 주님 따라 걷는 길의 기쁨이 있다. 이 욕심, 저 욕심 이고 지고 걷기 시작한 길에서 많은 욕심을 내려놓고 걷는 중이다. 내려놓을 때마다 주님이 주인 되시는 길을 걷는 기쁨이 있다. 목자 따라 걷는 양처럼 물가로 인도하시면 목을 축이고 초장으로 인도하시면 꼴을 먹고. 목자의 얼굴만 구하며 걷는 걸음에서 오는 기쁨이 있다.


주님 어디 가세요? 저도 따라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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