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서서

by 푸른새벽

온 가족이 모처럼 쉬는 날이다. 교대근무 중인 아빠의 일정만 맞으면 정말 온 가족이 쉬는 날이다.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니 아무 일정 없이 온전히 쉬는 날이 자주 있는 날이 아니다.


여유롭게 말씀보고 집안일도 하면서 쉴 수 있겠다 싶었지만 평화로운 쉼은 엄마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건가보다. 아이들이 보드게임하면서 벌써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 소리가 들리면 곁으로 가서 같이 좀 놀아주고 중재해 주면 좋으련만 나도 내 쉼을 누리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가 무겁다.


쉬는 날이지만 쉬는 것 같지 않고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은 아이들 싸우는 소리 때문보다 내일 있을 병원 일정 때문이다. 작년 건강검진에서 녹내장 의증이 떠서 검사하느라 안과를 전전하다가 결국 큰 병원 예약을 잡았다. 안과마다 진료 볼 때 하는 얘기가 달라서다. 괜찮다는 소견, 심각하다는 소견. 괜찮다는 전문의 말만 귀에 들어오면 좋겠건만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그냥 넘겨지지 않는다.


내일 큰 병원 검사가 왠지 확정일 것 같은데 거기서도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쩌나 마음이 좌불안석이다. 내 생애 이런 큰 병은 처음이라 많은 생각이 든다. 내가 홈스쿨링을 하지 않고 복직해서 남들 사는 것처럼 평범하게 살았다면 괜찮았을까. 이런 병이 안 왔을까.


오랜만에 시어머님이 아이들을 보러 오셨다. 도련님네 이사 간 집이 넓더라, 동네가 좋더라, 일하는 곳이 조금 일하고 돈도 많이 번다는데 너도 공부 좀 하지 그랬니 우스갯소리로 신랑에게 건네는 말이 왠지 마음에 남는다. 내가 복직했다면 이런 말들이 마음에 남지 않고 편하게 들렸을까.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를 결심하고 글을 쓰고 있다. 깊은 우물물이 끌어올려지는 날이 있고 내 안에 끌어올릴 물이 바닥난 것 같은 날이 있다. 요 며칠 내내 그렇다. 오늘도 뭘 쓸지 한참을 망설이다 오후나 되어서야 두서없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다지 쓰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다. 아버지께 풀어놓듯이 쓰는 글의 힘을 믿어서일지도 모른다. 아버지, 오늘 저 이랬어요 하고 글을 풀어놓으면 여지없이 딸아, 하고 응답해 오시는 하나님. 한참 그런 아버지를 일기를 쓰며 만난 시간들이 있다. 잊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그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딸아, 네가 뭘 보고 있니’라고 물어오신다. 그 물음 한마디에 이미 눈동자에 눈물이 찰랑거린다.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 마음이 흔들렸다. 오늘 아침 인도의 선교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인도에서 세 아들을 궁핍한 중에 키워야 하는 고됨을 솔직한 눈물로 이야기하지만 또 주님을 찬양하셨던 아름다운 선교사님이셨는데 남편선교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이다. 인도 내에서도 오지에서 선교하시는 고됨을 익히 들어 아는데 남편선교사님이 먼저 가신 소식에 눈물이 쏟아졌다. ‘주님의 길은 왜 이렇게 힘들게 걸어야 되나요.’하고 한탄이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여쭤보는데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응답해 오신다. 그 선교사님은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얼굴을 늘 바라보고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행 23:11)


‘증언’에 대해 묵상하려고 주목했던 구절에서 의외로 ‘곁에 서서’라는 구절로 눈길이 가게 하신다. 원어의 의미를 찾다 보니 ‘누군가가 확고하게 되도록 세우다 ‘라는 뜻이 있다. 주님께서 곁에 서는 일은 그러한 일인가 보다. 그 정체성, 부르심을 확고하게 되도록 세우시는 일. 주님 곁에 서면 그렇게 시선이 바뀌나 보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져서 그렇게 정체성이 확고하게 세워지나 보다.



내 곁에 서서 담대하라고 하시는 주님께서 네가 무엇을 보고 있니 물어오신다. 주님은 늘 아이들 곁에서 나를 부르신다. 당신 곁으로 오라고. 아이들 곁에 서서, 주님 곁에 서서 주님이 하시는 일을 같이 하자고.


오랜만에 첫째와 배구를 했다. 아이가 신이 나면 어떤 말을 주로 하는지, 아이가 뛰기 시작하면 얼마나 금방 머리카락이 온통 땀에 젖는지, 그리고 나는 얼마나 아이와 똑같은 모습으로 신나게 뛰어노는지 보게 된다. 주님이 곁에 서서 나를 확고하게 되도록 세우셨다. 시선을 바꾸시고 주님을 다시 바라보게 하신다.

이전 12화따라 걷는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