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해 혈루증 앓은 여인이 주님을 만났을 때

by 푸른새벽

어제는 대학병원에서 눈 검사를 받았다. 안과에만 2-30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인원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에서 그렇게 많은 대기인원은 처음 본지라 너무 놀랐다. 동네 안과에서는 대기 없이 쉽게 받았던 검사를 줄을 서서 겨우 받는다. 교수님 이름 보고 예약한 거긴 하지만 괜한 걸음 한 건가 싶은 순간들이다. 기본 검사들을 받고 겨우 만난 교수님은 얼굴 몇 초 보여 주시고 다른 검사를 더 받고 오라 하신다. 그제야 일반 안과에서는 받아보지 못했던 검사들을 받고 교수님을 다시 뵈었다. 녹내장 쪽에서 유명하신 분이라는데 명확히 떨어지는 말씀은 않으신다. 약을 늘리고 다음 달에 다시 보자는 말씀만. 진료가 너무 바빠 보여 무슨 질문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장 처음 진료 봤던 병원에서 처방해 줬던 안약으로 웬만하면 안압이 떨어졌을텐데 이상하다는 말씀에 나도 참 이상했다. 그냥 생각 없이 처음 병원을 계속 다녔어야 하나. 이미 다녀본 병원만 3군데다. 아이들 다니던 병원에서 첫 진료, 녹내장전문의 찾아서 두 번째 병원, 명의로 소문났다고 지인이 추천해 줘서 가본 일반안과. 마지막 병원에서 엄청나게 겁을 줘서 결국 의뢰서를 받은 참이었다(환자가 관리를 소홀하게 할까 봐 겁을 준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고질적으로 아파오던 부분에 대해서 증상이 하나도 나아지지 않아도 원인만 정확히 알아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확실한데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다. 정체 모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에서 어쨌든 약으로 관리만 잘하면 된다는 말을 듣길 원했다. 상태에 대해 정확히 진단받고 의사가 내 상태를 잘 안다라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을 느끼길 원했다. 그런데 큰 병원이지만 그간 거쳐간 병원에서의 진료를 아우르는, 명확하게 떨어지는 진단이 없다. 종착점이길 바랐는데 4번째 병원에 불과한 느낌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그냥 첫 번째 병원을 다녔어야 하나, 두 번째 병원이 대기가 길었어도 큰 병원보다는 짧은 셈이었는데 그 병원으로 그냥 다녔어야 하나. 머릿속이 많이 복잡하다. 이 계산, 저 계산하느라.


확실한 것을 찾아 큰 병원, 유명한 의사를 찾아갔지만 주님은 네 믿음이 어디 있냐고 물어오시는 것만 같다. 딸아, 날 믿을 순 없겠니? 하고 물어오시는 것만 같다. 의사 말고 나 말이야. 열두 해 혈루증 앓은 여인이 결국 주님을 붙든 것처럼. 열두 해 동안 나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한 그 혈루의 근원이 마르게 된 것은 주님을 붙들었을 때이다.



병원검사를 받고 온 다음날 하루 종일 첫째가 짜증을 내고 나는 나 나름대로 자기 연민에 빠져 첫째를 전혀 품어주지 못했다. 내가 지금 이 길을 걷고 있어서 내 몸이 이런 거야, 이제 이 길 안 걷고 싶어요, 온몸으로 소리치고 있는 것을 주님은 들으셨을 것만 같다. 그런데 주님은 내 눈 말고 다른 것을 고치길 원하시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네 안의 혈루의 근원을 내가 고치길 원한다.


시력교정수술을 받기 전 혹시 해서 들른 산부인과에서 예상치 못한 임신 소식을 들었다. 첫째였다. 10년 전의 일이다. 내 눈의 상태를 미리 아신 주님께서 수술을 막으셨나보다. 주님은 처음부터 특별한 계획을 갖고 삶을 인도해오셨나보다. 그렇다면 당장 평안함을 주는 세상적인 확실함보다 더 확실한 주님의 계획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 늘 문제는 문제가 아니고 주님이 기다리시는 믿음을 고백하게 하는 디딤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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