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해 혈루증 앓은 여인의 고백

by 푸른새벽

‘아버지, 왜 지금이어야 하나요? 저는 이 병이 오기에는 아직 젊잖아요.’

하루 종일 징징거리는 아이들 붙잡고 공부시키다가 저녁 기도회에 가서 울컥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하는지, 이 길 위에 있다가 내 몸이 이렇게 된 것만 같아 마음이 또 흔들린다.


‘딸아, 지금 내가 너에게 할 일이 있단다.’

꼭 지금이어야 하나보다. 지금 고치실 것이 있다고 한 말씀을 다시 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제가 홈스쿨링을 꼭 계속해야 하나요? 홈스쿨링 하느라 몸이 상한 것만 같아요.’

이판사판으로 주님을 붙들고 늘어졌다. 신랑이 기도회 끝났다며 가자고 어깨를 툭툭 친다. 아 아직 답을 못 들었는데. 이미 잠든 막내를 안고 두 아들들을 깨워 일어났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주님 꼭 답을 들어야겠어요.’하는 마음에 기도의 끈이 놓아지지 않았다.


‘선교사가 선교지를 버리니?’

늘 선교지에서 몸 상해가며 선교하시는 선교사님 생각들을 자주 하곤 했었다.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시는 건지.

‘제가 아이들을 학교 보낸다고 버리는 건 아니잖아요. 선교사가 선교지를 떠나도 버리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선교사 또 보내실 거잖아요.‘

다시 여쭤보는데 인도의 한 선교사님이 코로나 때 한국행 마지막 비행기를 떠나보내셨던 이야기를 들었던 생각이 났다. 선교사님 가족이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잠시 한국으로 들어갔다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오자고 의논을 마치셨다고 했다. 한국보다 코로나가 많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비행기까지 보내 자국민을 자국으로 다시 데려오던 때였다. 떠날 준비를 마치고 홀로 귀가하시던 중에 사역하시던 지역의 전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이르셨다. 떠나지 못하겠다고 한참을 눈물을 쏟으시다가 아내선교사님께 이 땅에 남자고 설득하셨다고 했다.


이 땅을 사랑한다고 울며 고백했던 선교사님의 간증이 떠올랐다. 결국 주님이 이제 그만 됐다 하실 때까지 나도 이 자리를 지키겠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어디서든 배울 수 있고 또 어디 있든 내가 내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든 저 자리든 주님께서 명하신 자리를 단순한 마음으로 지키겠다고,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직 주님께서 다른 자리를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고백했다.



약을 늘린 후 통증으로 계속해서 불편했다. 그 통증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또 불안했다. 기도회가 끝나고도 붙든 기도 끝에 내 영혼이 주 안에서 안전하다고 고백하고 나서야 통증을 관리할 방법을 찾아냈다. ‘아버지, 저 이 길 갈텐데 홈스쿨링하면서 저 안 아프게 해 주세요. 눈 안 상하게 해 주세요.’ 이 단순한 기도를 처음으로 올려드렸다. 홈스쿨링의 길 위에 계속 서겠다고 다짐하고서야 나온 기도였다. 기도의 주파수가 이제야 정확하게 맞춰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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