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맞고 왔다.

by 푸른새벽

내 아이가 또 맞았다. 첫째를 심심찮게 때리던 한 아이와 오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도사님께서 중재를 해주고 계신다. 첫째는 한껏 운 얼굴이다.

주일예배 시작 전이라 바쁘실텐데 첫째와 놀던 다른 아이가 전도사님을 불러왔나보다. 나는 전도사님보다 한발 늦게 온 참이었다. 내가 중재할 필요 없이 전도사님이 중재해 주시니 일단 감사하지만 몇 주째 첫째를 때리던 그 아이와 그 상황들을 말없이 지켜보는 것이 고역이다. 아이의 엄마로서 상대 아이를 꾸짖는 것이 맞는 일인지 고민이 돼서 쉽게 야단을 못 치고 있다. 아이의 부모가 교회 식구니 더 조심스럽다.


아이 싸움으로 부모들까지 껄끄러워진 적이 있다. 그때 내 마음이 힘들었던 포인트도, 오늘 내 마음이 힘든 포인트도 같아서 이것은 상대 아이와 그 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싸울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고 싶다. 그렇게 마음이 편하면 좋겠는데 눈앞에서 내 아이가 일방적으로 맞는 모습을 보게 되면 심장이 쿵쾅거린다. 아이가 더 어릴 때에는 내가 아이를 내려놔야하나보다, 내가 아이에 대해 너무 집착해서 이렇게 힘든가 싶었다.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을 묵상해보려 애썼다. 아이가 커지자 상황의 레벨이 더 업그레이드된 것은 내가 그때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은 아이와 여러 번 비슷한 상황에서 주님은 참 많이 기도를 시키셨다. 그리고 성실하게 응답해 주셨다. 어떤 때는 그 아이 행동의 이면에 있을 아픔을 읽게 하셨고, ‘이 아이는 나를 사랑하는 아이다.‘라는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하고, 또 오늘 새벽, 주님께서 그 아이와 아이 부모를 사랑하신다는 마음을 주시는데 울컥하기까지 한 것이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영혼이라면 제가 당연히 사랑해야죠, 하고 기도했는데 그런 기도가 나오는 날은 영락없이 당첨이다. 미리 기도하게 하신 데는 뜻이 있으신가보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한참을 씩씩대며 신랑에게 하소연했다.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를 결심하고 오늘도 뭘 써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여전히 쓰기 싫은 이야깃거리를 붙들고 한참을 써내려갔다. 그러다 도저히 못 쓰겠다 싶어서 멈추던 차였다. 아이가 맞고 온 얘기 더 이상 못쓰겠다 싶고, 쓰면 쓸수록 더 화만 나는 것 같다. 그렇게 하소연을 하는데 한참 듣던 신랑이 한마디 건네왔다.

“욱하는 남자애들은 원래 그래.”

그 한 마디에 깨어졌다. 그 아이가 ‘내 아이를 때린 그 아이’에서 그냥 보통 남자아이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아이의 엄마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냥 욱해서 그런거구나 이해가 되니 그 아이를 편한 마음으로 야단칠 수 있을 것 같다. 내 아이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주일학교 선생님으로서 꾸짖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서할 준비가 드디어 되었다.



‘사랑’은 보통아이가 특별한 아이가 되게 하지만 ‘이해’는 특이한 아이를 보통아이가 되게 한다. 그래서 항상 사랑은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이해 없는 사랑이 맹목적인 사랑이 되기 쉬운 이유, 일방향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때론 이해되지 않아도 사랑해야 할 때가 있겠지만 그러한 때에라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


내 길 달리기를 멈출 때 주님이 주님의 길을 보여주신다. 내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을 때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신다. 내 아이를 꼭 쥐고 있던 손을 주님께로 펴드리자 주님의 아이를 활짝 펼친 손 위로 내어주신다. 한 뼘 더 넓어진 품으로 사랑을 더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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