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계절
폭우가 끝나고 피부가 벌겋게 익는 열기가 다시 기승이다. 여름이 지내기 편한 계절은 아니지만 속살 빨간 수박도 익어가고 여름과일이 풍성하니 겨울보다는 낫다. 젖 뗀 아기 첫 이유식을 겨울에 시작하면 이유식 만들 제철 재료도 찾기 힘들다. 여름도 가을도 열매가 풍성한 계절이니 인생이 여름 같고 가을 같으면 참 잘 나간다 싶은 인생일 것이다. 얼음 녹고 새순 돋는 봄 같은 시절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계절은 어떠할까. 아기가 예뻐서 보고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그 시절은 봄일까. 금방 고개를 가누고 뒤집으면 또 기어 다닌다. 사방팔방 활동지경이 넓어져 엄마의 혼을 쏙 빼놓는다. 그렇게 아이의 자람은 엄마가 기다리던 열매일 것이다.
엄마의 계절은 아이가 자라는 시간인지, 엄마가 자라는 시간인지 늘 헷갈린다. 아이가 자라면 엄마도 함께 자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구분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느 쪽이라 할지라도 나의 지금은 겨울인 것만 같다. 눈에 보이는 열매 없이 마른 가지처럼 기다리고 버텨야 하는 시간인 것 같다. 그러한 계절 안에 있다 보면 안갯속을 걷는 듯 막막하기도 하다.
메마른 가지 하나하나를 되짚어 본다. 아이가 작은 두 손 모아 기도하기 시작하던 그날, 한글을 떼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 더듬더듬 성경을 읽기 시작했던 그날, 아이 인생 처음으로 용기를 내 숨겨왔던 잘못을 고백해 주었던 그날. 수많은 ‘그날’에 조그마한 열매가 맺혀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일기만 쓰다 처음 브런치 작가심사에 통과했던 날, 쓰고 싶던 글을 토해내듯이 써 올려 완성한 브런치북 한 권, 공모전에 글을 보내 상금을 받았던 날.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브런치가 사실 정겨운 마을이었음을 알았던 날.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아주 작은 열매들이 맺혀서 자라고 있을테다. 모두 봄인 듯 여름 같은 날들이다.
쓰다 보니 겨울인 줄 알았던 나의 계절은 사실 작은 열매들이 뜨건 햇살과 비바람 맞으며 자라는 여름일지도 모르겠다. 내 눈에 열매가 보이지 않고 열매의 자람이 보이지 않아서 겨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안 보이냐고 물어오시는 듯하다. ‘딸아, 안 보이니? 지난봄 너의 얼음장 같은 빗장을 녹이고 돋아났던 새순이 꽃으로 피고 지어 맺은 작은 열매들, 그 열매들이 여름 지나 발갛게 익어 추수될 가을이 곧 온단다. 너의 지금은 봄을 기다리는 겨울이 아니라 네 품의 작은 열매를 안고 가을을 기다리는 여름이란다.’
태어나자마자 폐렴으로 신생아중환자실 신세를 졌던 첫째, 자주 넘어져서 이마에 멍자국을 더듬이처럼 달고 다녔던 둘째. 응급으로 태어나 더디고 더뎠지만 결국 걸어내고 재잘거리게 된 막내. 아직도 걱정거리로 가슴 한켠을 아리게 하는 것들은 더 잘 익은 열매로 자라기 위한 따가운 햇살이요 빗방울이며 바람일 것이다. 살아있는 것이라 햇살도 빗방울도 바람도 다 꼭꼭 소화해내어 속살을 자라게 할 것이다. 그렇게 속사람을 자라게 하는 양분일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저마다의 계절을 지난다. 겨울에도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봄 되면 터져 나올 눈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 그렇다면 열매의 속살을 키우며 견뎌내는 시간은 더더욱 살아있는 시간이다. 비록 자라남이 보이지 않고 견뎌내야 할 시련만 커 보인다 할지라도 내 품의 작은 열매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일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자란다. 그 믿음의 인내가 마침내 소망을 맺을 것을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