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길에서 말뚝 박고 쉰다는 것은

나를 멈춰 세워도 괜찮은 이유

by 푸른새벽

세 아이를 홈스쿨링으로 키우는 중이다. 홈스쿨링이라고 학원도 안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개인 시간은 적은 편이다. 엄마의 시간 가운데 아직 유아기를 지나고 있는 막내의 지분이 크기 때문이다.

첫째 때 아기를 재우느라 아기띠를 하면 마치 내 손과 발이 묶이는 느낌이었다. 세 아이를 커버하고 있는 지금 생각하면 아기 하나 안고 있는 게 뭐가 그렇게 묶인 것 같이 답답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후배엄마들에게 그때의 경험을 늘 그렇게 말해왔다. 처음 아기를 키우면 정말 손과 발이 묶이는 느낌이라고.


아이가 앉기 시작할 때는 더 막막했다. 기어 다니다 앉기 시작하니 앉아 있다가 언제 뒤로 나자빠질지 몰라 아이에게서 눈을 떼기가 어려워졌다. 첫째가 11살인 지금 생각하면 그게 막막했던 초보엄마가 우습고 귀엽다. 하지만 그때는 애만 보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그렇게 답답했다.


첫째가 걸어 다니며 이제 조금 숨통 트이나 싶을 때 둘째가 들어서고 활동적인 둘째가 이제 좀 덜 넘어지고 기저귀졸업까지 하니 정말 손발이 자유로워지나 싶을 때 막내를 주셨다. 그리고 깔끔 떠는 막내가 기저귀는 빨리 떼도 밥은 엄마가 먹여줘 하는 통에 언제 아기엄마 노릇을 졸업하나 싶다.



민수기를 읽고 있다. 머물렀다가 떠남의 반복이다. 말뚝 박고 장막을 쳤다가 구름이 떠오르면 다시 말뚝 뽑고 출발하기를 반복하는 여정이다. 멈추라고 하실 때 엉거주춤 쭈그려 앉아있을 수 없다. 구름이 멈춰 서면 정말 말뚝을 받고 온전히 머물러야 한다.


말뚝 받은 그곳에서 또다시 출발하기 전까지 제거하고 버려야 할 옛 습성들이 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훈련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 노정 가운데 먼저 받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가나안 땅으로 돌격! 하고 싶어도 지금은 멈춰서야 하는 이유다.


유아기인 막내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여정은 영락없는 광야길 같다. 좀 더 가야 할 것 같은데 구름이 멈춰서버리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진도를 쭉쭉 빼고 싶은데 멈추라고 하시면 조금만 더 가도 되지 않나요, 언제 가나안 가냐고요 부지런히 가야지요, 이러고 있다.


첫째가 내 팔을 잡아끌면 첫째야, 네가 할 수 있어, 해봐. 둘째가 내 이름을 부르면 둘째야, 엄마 설거지하잖아, 나중에 하자. 결국 막내가 내 팔을 확 잡아채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그제야 멈춰선다. 나를 멈춰 세우는 아이들에게 온갖 짜증이 나고 이 모든 것이 신랑 탓인 듯 나 좀 나가서 쉬게 해 줘! 성화를 부린다.


그런데 육아의 광야에서 엄마에게 하실 훈련이란 멈춰서는 훈련이라고 하신다.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진도 빼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온전히 머무는 훈련 말이다. 그 훈련을 온전히 통과하지 못해서 아직도 좌충우돌이다.



아이들이 엄마 같이 자자 불러 세울 때 잠시만 엄마 10분만 정리하고, 10분만 글 마저 쓰고 이러다 어제는 10분이 20분이 되어서야 방에 들어가 보았다. 모두 꿈나라로 간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아싸! 했을테지만 계속 이어나가게 하시는 묵상의 주제가 주제다보니 뭔가 아차! 싶다.

“엄마가 동물이야기 해준다고 했는데 늦게 와서 미안해.”

모두 자는 줄 알았는데 둘째가 잠결에

“괜찮아. 내일 해줘.”

웅얼거리다가 깊이 잠들기 시작했다. 그 웅얼거림에 울컥했다. 주님이 준비해 놓으셨을 그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그 시간이 어떤 시간이었을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나와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을 놓쳐버렸을지 모르겠다.


주의 구름 따라 멈춰서는게 안 돼서 계속 같은 훈련을 반복 중이다. 멈춰서지 않아서 지나가버렸던 눈물 어린 순간들이 떠오른다. 한참 몰입하려는데 나를 멈춰 세워도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 멈춰선 곳에 내 생각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예비하셨음을 믿기 때문이다.


아직 잠이 오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누우면 엄마 옆으로 쪼르르 누운 아이들이 합창하듯이 이야기를 해달란다. 엄마가 만들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둘째의 주문대로 불곰과 북극곰이 혈투를 벌여야 하고 막내의 이야기에는 공주가 나와야 한다. 이야기는 제멋대로에 막장인데도 이야기를 하다 엄마가 졸면 아이들이 사정없이 흔들어 깨운다. 그다음 이야기를 내놓으라고.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면 밤마다 엄마가 꾸벅꾸벅 졸며 해준 이야기들을 기억할까. 엄마가 꿈나라로 넘어갈 듯 말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던 이 시간을 기억할까. 내가 멈춰서지 않고 계속하려 했던 일 나부랭이들은 이 아이들의 기억에 남을 오늘 밤보다 아름다운 것이었을까. 나를 멈춰 세운 곳에서 주님이 준비하신 것은 내가 하려던 일보다 틀림없이 더 아름다울 것이다.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끊임없이 나를 멈춰 세워도 괜찮은 이유다. 멈춰서는 이 훈련 가운데 숨겨진 보물 한켠이 보이는 듯하다. 결국 멈춰서는 훈련은 주님을 신뢰하는 훈련인가보다.


(적극적으로 멈춰서는 훈련에 무릎 꿇었더니 자투리글만 길어져서 고쳐 쓰는데 한참이 걸리네요ㅠ 아직도 글쓰기루틴은 우왕좌왕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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