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는 감사 인사를 정말 극적으로 한다. 간식을 마음껏 먹은 날은 “오늘은 최고로 행복한 날이었어. 엄마 감사합니다. 간식 사주셔서. 엄마 사랑해요.” 이런 인사를 그날만큼은 대여섯 번은 한다. 가족이 다 같이 나들이를 다녀온 날, 외식을 다녀온 날, 간식을 풍성하게 먹은 날은 첫째의 이런 멘트들 덕분에 신랑도, 나도 괜히 좋은 부모가 된 것 같고 뿌듯해지곤 한다.
첫째는 불평도 극적으로 한다. 스트레스가 유독 심한 날,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이 희박할 때 오는 낙심 등을 어마어마하게 표현한다. 동네가 인도, 차도 구분이 잘 안 되고 걸어 다니기에도 위험한 곳이 많은데 갑자기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르던 날이었다. 동네 친구들이랑 라이딩을 다니고 싶다나. 아빠, 엄마가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할머니조차도 위험해서 안된다고 거절하자 불평을 쏟아낸다. 그저 졸라대는 수준이 아니다. 자전거 타기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가잔다. 감사도, 불평도 극적으로 하다 보니 지켜보는 부모가 아이의 기분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탈 때가 많다.
저녁시간 신랑과 동네를 걷고 있다. 첫째 때문에 하루 종일 휘둘리다 겨우 집을 나선 이 저녁에 생각해 본다. 자녀는 주님이 주신 기업이고 복이라는데 그 말이 진짜 맞나.
문득 첫째의 극적인 반응이 떠오른다. 감사해요. 행복해요. 아버지가 주신 것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반응해 왔는지 생각해보게된다. 나도 첫째처럼 반응한다면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주님께서 아이들을 제게 주셨지요? 아이들을 주셔서 아버지, 감사해요. 이 아이들 때문에 너무 행복해요. 최고예요. 아버지, 사랑해요.‘
의지적으로 하는 고백 가운데 울컥해진다. 밤이 되어 모두 잠든 세 아이를 바라보며 이 아이들을 주셔서 감사해요. 이 아이들 때문에 너무 행복해요. 고백해 본다. 아이들이 어떠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연약함과 나를 폭발하게 만드는 어떤 부분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마음이 솟는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 그분의 사랑과 신실함을 믿는다는 고백이 함께 나온다.
주님이 주신 기업인 자녀를 누리게 해 달라는 기도에 ‘누리라’고 답해오신다. 주셔서 감사하다고, 최고라고, 행복하다고 고백할 때 열리는 문이 있다. 마음이 먼저가 아니라 입술의 고백이 먼저일 때가 있다. 입술의 고백이 길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