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넘어가는 여름밤, 둘째가 덥다고 난리법석이다. 여름에도 양말을 찾는 아이가 평소와 다르다. 에어컨 타령하는 둘째에게 선풍기를 틀어주고 옆에 누웠다. 오늘도 동물이야기 타령하는 막내 덕분에 이야기를 짜내던 중이었다.
"엄마, 사자와 늑대랑 코끼리 이야기해 줘."
이렇게 주문이 들어오면 그 아이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즉석으로 만들어 대령해야 한다. 사는 곳도 다른 애들을 어떻게 엮어내지? 하는데 선풍기 틀어도 덥다고 둘째가 난리다. 계절에 안 맞는 난리법석에 화가 나서 에어컨은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니 둘째가 토라진 얼굴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버린다.
"옛날에 초원에 사자가 살고 있었어. 그런데 사자는 초원의 동물들을 보살피고 다스리느라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어."
이야기는 늘 이런 식이다. 은근히 엄마 신세타령이 들어간다. 사자에 감정이 이입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숲에 사는 늑대가 초원으로 놀러 온다. 왜 놀러 왔는지 모르겠지만 늑대가 계속 "아유 더워. 숲은 시원한데 초원은 왜 이렇게 더운 거야. 사냥 한번 하려고 해도 다 들켜서 사냥도 어렵고" 하고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이쯤 되면 늑대는 그냥 둘째다. 그런데 둘째에 대한 지친 마음을 늑대에게 다 쏟아붓고 나니 괜히 측은해진다.
"둘째야, 에어컨 잠깐 틀어줄게. “
둘째는 이불로 가렸던 얼굴을 다시 쏙 내민다.
"사자는 안 그래도 피곤한데 늑대에게 화가 났지만 모처럼 초원에 놀러 온 손님이니 왜 그렇게 모든 게 불평인지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늑대를 집으로 초대했지."
늑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결심한 사자는 역시 다스리는 동물이다. 엄마가 자녀에게 그래야 하고 어른이 아이들에게 그러해야 한다. 왜 그렇게 더워하는지 이유를 물어도 둘째가 잘 설명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이유가 있겠지’ 하는 여유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사자가 되고 둘째가 늑대가 될 때 나온다.
이야기의 힘이 그런 것 같다. 내가 꼭 붙들던 틀을 내려놓게 하고 또 상대의 자리에 앉아보게 한다. 눈앞에서 난리법석인 아이를 보면 도저히 이유가 있겠지 하는 여유가 생기지 않고 불쌍히 여겨지지도 않는다.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만 하는지 시선이 나에게서 상대에게로 도저히 옮겨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는 너무도 쉽게 나에게서 상대에게로 시선을 옮기고 상대에게 있을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고 싶게 만든다.
늑대는 초원에서 난리 법석이었던 이유를 사자에게 털어놓는다. 그리운 코끼리를 만나러 온 애틋한 마음, 코끼리를 찾아 헤매는 시간 가운데 느껴야 했던 조바심들은 사자의 도움으로 코끼리를 만나고 해소된다.
사자와 늑대와 코끼리의 이야기는 그럭저럭 마무리되었지만 둘째는 새벽까지 더위타령으로 몇 번을 더 잠을 설쳤다. 그리고 아침부터 치과에 가서야 문제는 해결되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충치는 엑스레이를 찍어서야 그 깊이가 확인되었다. 결국 둘째를 밤새 힘들게 했던 것은 충치로 인한 염증 내지 열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치통으로 덥다고 난리였던 둘째를 불쌍히 여기며 양보해주지 않았다면 그다음날 치과에서 얼마나 미안했을지. 그런 후회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 덕분이다. 나는 사자가 되고 늑대는 둘째가 되고서야 한 발자국 떨어져 상황을 보게 된다.
수많은 이야기에 내가 있고 또 상대방이 있다. 그렇게 이야기는 너와 나를 이해하게 하고 또 끌어안게 한다. 너무 다른 나와 아이 사이에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다. 둘째 아이는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늑대가 되었다가, 둘째 사자가 되었다가, 또 치타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를 통해 아이를 알아가는 보석 같은 여름밤이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