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감정폭풍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홈스쿨링 10년 차에 접어드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막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징징댄다. 그래도 막내는 막내인지라 아직 콩깍지가 덜 벗겨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토닥일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 점점 어려워진다. 막내의 아침이 지나가고 첫째, 둘째 중 한 명이 한번 더 감정테러를 가하면 정말 힘든 하루가 되고 만다.
요 며칠은 아무 일정이 없는 추석연휴였다. 하루 종일 같이 놀던 동네친구들은 하나둘 가족일정으로 자취를 감췄다. 교대근무하는 아빠의 근무일정 때문에 친정이나 시댁으로 일찍 출발하지 못하고 아직 집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중무휴인 마트라도 다녀오자 싶어 갔다 오는 길, 결국 둘째가 테러를 가한다. 첫째, 막내와 다르게 둘째와는 쇼핑이 참 힘들다. 집에 들어와서 좀 잠잠해지나 싶더니 엉뚱한 일로 다시 한번 폭발한다. 이 정도의 테러는 손에 꼽히는 수준이라 홈스쿨링을 다시 생각하게 될 정도이다. 둘째는 한참을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 사이 막내와 놀아주다 다시 막내가 징징거리기 시작하는데 이제는 내가 울음이 터진다.
눈물자국을 닦기도 전에 부스럭거리며 둘째가 잠에서 깬다. 자고 일어나서도 울다 잠든 감정 속에 있는 둘째를 보며 아침에 읽었던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죽어야 생명이 전해진다 ‘ 눈가의 눈물을 닦아내고 둘째에게 점심을 챙겨주니 죄송하다며 포옹으로 사과를 전해온다.
그렇게 짠 하고 내 감정도 풀어지면 좋겠지만 저녁 내내 자기 연민에 빠져있다가 아이들을 재우고 글 앞에 앉았다. 너무 힘들다고, 하나님 제가 너무 힘들어요, 만 반복하던 기도에 ’ 둘째가 왜 운 것 같니 ‘하고 물어오신다. 오늘 하루를 강타한 둘째의 울음의 의미를 아냐고 물어오신다. 내 눈물은 아이들이 크면 금방 그칠 눈물이지만 둘째가 흘린 눈물은 어쩌면 평생 흘릴지 모를 눈물이라고 의외의 답을 해오신다.
둘째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첫째도 아니고 막내도 아닌 자리. 혼자서도 이것저것 곧잘 하지만 막상 아무도 챙겨주지 않으면 서운한 그 자리. 주님은 그러한 둘째의 울음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쓴소리를 해오신다. 어쩌면 아이의 울음을 이해해야만 자기 연민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하신 쓴소리일지 모른다.
아이들이 크면 내가 울 일은 금방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울음은 지금 달래주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속 흐르는 눈물이 되어 그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서 아이의 울음의 이유, 그 이면을 이해하고 달래주는 일이 필요하다.
아이가 운다고 하소연하니 아이를 기다려주라는 말을 들었다. 몇십 분째 우는데 기다리다가 내가 죽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래도 기다리는 게 맞나 보다. 기다려야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다. 지금 닦아주지 않으면 평생 흘릴지 모를 아이의 눈물을 품어주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기다려야겠다. 아이의 얼굴이 해처럼 빛날 때까지, 꽃처럼 피어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