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글쓰기 루틴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로 결심하고 매일 글을 쓰려고 애쓰던 시간이 지나갔다. 100일 동안 글을 쓰고 나면 생기는 일 이런 류의 제목으로 글을 써보리라는 뜻을 품었던 시간이 지났다. 퇴고한 날도 쓴 셈으로 치고, 그러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편씩 써재끼기도 하면서 어느새 100일을 세던 메모도 없어지고 글을 쓰지 않는 날도 생기면서 100여 일이 지나갔다.
100일은 글솜씨가 감히 느는 시간이라기보다 앞으로 글을 쓰며 걸어갈 준비운동을 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새벽형인지, 야간형인지를 고민했다.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다. 내가 어느 형인지 고민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새벽형이지. 밤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것이 나에겐 어불성설이었다. 밤에는 시간을 허투루 보낼 유혹거리도 많았고 밤이 깊어질수록 체력도 바닥을 쳐서 집중해서 글을 쓸만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형인지 밤형인지 치열하게 고민한 것은 글쓰기 루틴을 잡는 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면 그래도 말씀부터 읽고 기도부터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말씀부터 읽고 기도도 좀 하다 보면 새나라의 어린이, 우리 막내가 기상을 한다. 그때부터는 글이고 뭐고 없다. 아침식사부터 대령해 드리고 같이 공부하자, 책을 읽어달라 주문이 많은 막내 덕분에 내 계획들은 중단된다. 더 일찍 일어나면 되지 않나 싶지만 새벽에 더 일찍 일어나 글을 집중해서 썼던 어느 날, 하루 종일 눈이 불편했다. 녹내장 진단 이후로 눈이 예민해진 탓이다. 처음으로 나는 이. 제. 는 새벽형이 아닌가봐 라는 생각을 했다.
루틴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추출되는 것이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생각하게 하는 표현 같아서 여러 번 곱씹었던 표현이다. 그런데 100일의 시간이 정말 루틴이 추출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아무리 내 소욕을 채우려고 이렇게 저렇게 루틴을 짜고 계획해 보아도 이상하리만치 삶이 정돈되지 않고 몇 안 되는 그 욕심이 채워지지가 않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세워지고 굴러가는 루틴들이 있다. 일어나자마자 말씀을 소리 내어 읽고 짧게 기도 하는 일이 그러했다. 그런 일은 내가 욕심부리지 않아도 저절로 루틴이 되고 또 저절로 이런저런 삶의 열매가 맺히곤 한다. 사랑방교제와 가정예배에서 나눌 말씀꼭지들이 나오고, 묵상했던 내용이 글의 소재가 되고 또 그 내용으로 살아가게 되는 일. 결코 내 노력으로 일궜다고 할 수 없는 열매들이 저절로 맺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일은 글쓰기인데 글 쓸 시간 확보가 너무 어려웠다. 매일 쓰는 게 무리라면 일주일에 1번이라도 카페에 나가서 글을 써보자 싶었지만 그런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카페에 갈 시간 내기가 힘들어졌다. 겨우 나가면 너무 적은 시간 나갔다가 책만 읽고 글은 한 줄도 못 쓰고 돌아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막내를 센터 교실에 들여보내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글을 써볼까 생각했던 날, 막내가 갑자기 교실에 들어가기 싫다고 울며불며 난동을 부렸다. 글쓰기는 커녕 울며 겨자 먹기로 함께 교실에 들어가 벌서듯이 교실 구석에 앉아있어야 했다. 정말 계획 세우기의 여왕이었는데, 뭔가 꾸준히 하고 체계적으로 하는 것에는 자신 있다 싶었는데 무엇 하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루틴은 정말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추출되는 것이라는 표현에 깊이 공감되는 것이다. 루틴은 만드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원래 심어두신 것을 발견하고 추출해 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아이들 곁을 더 지키고 싶어서 지금까지 홈스쿨링의 길을 걷고 있는데 정작 아이들과 어떻게 시간을 더 보낼지에 대해서는 큰 욕심도, 열심도 없다. 시작과 달리 이제는 좋아서 걷는다기보다 어쩔 수 없어서 걸어가고 있는 길 같다. 그럼에도 나에게 중요한 가치를 나열해보려고 하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빠질 수 없다. 일부러 시간을 정해놓고 놀아줘 볼까 계획을 세워보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아직 유아기를 지나고 있는 막내야 하루 종일 엄마 곁에 붙어서 놀아주고 책 읽어주고의 일상이지만 이제 꽤 커버린 첫째, 둘째는 이제 둘이서 놀거나 나가서 동네친구들과 공놀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잠드는 시간 아이들 옆을 지켜보기로 했다. 불을 끄고 나란히 누운 방에서 성장통이 있는 첫째 다리도 주물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둘째와 막내는 여전히 동물이야기를 해달라며 엄마에게 창작의 고통을 안겨주는 시간이다.
요즘 점점 취침시간이 늦어지는 것 같아 취침시간을 대폭 앞당기면서 아이들이 잠드는 시간을 옆에서 지켜주었다. 잘자면 재우고 나서 글 쓰는 루틴도 세울 겸 말이다. 그런데 너무 일찍 재우는 것 같아서 이게 되겠나 싶었다. 일찍 재우고 글 쓰는 루틴이 되겠나 싶었다. 그동안 아이들끼리 잠자리에 들도록 한 것이 오래되었는지 막내는 자기 옆에 누운 엄마에게 함박웃음을 보내며 "오랜만이네"라고 그런다. 동물이야기를 아주 진수성찬으로 풍성하게 차려서 두 아이들에게 대접하고 나니 둘째는 "감사합니다, 엄마" 평소답지 않은 인사를 한다. 첫째는 이미 다리 마사지 이후로 먼저 꿈나라다. 재우고 나온 후 일주일 동안 쓰지 못했던 글들을 써 내려갔다.
이렇게 쉽게 된다고? 글 쓰는 루틴을 못 잡아서 갈팡질팡한 시간이 100여 일인데 이렇게 쉽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과 글 쓰는 시간 모두 어쩌면 예술가가 조각해 내듯이 이미 형태를 갖추고 있었던 루틴이 정확한 지점에 정을 대었을 때 추출되어 나온 것만 같았다.
삶에서 중요하지 않지만 욕심나는 것들로 루틴이 쉽게 세워지고 잘 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쳇바퀴 속으로 들어가는 일일지 모른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난 이후에야 내가 원했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할지 모른다. 그러느니 루틴을 찾고 구하느라 애쓰다가 저절로 굴러가는 루틴, 어쩌면 주님의 섭리 안에 있는 루틴을 추출해 가는 것이 시간은 오래 걸려도 다행인 일이다.
다시 우왕좌왕, 왜 이러지 할 때가 생길지 모른다. 잘 굴러가던 루틴이 삐걱대며 정체기를 맞이한 것 같을 때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또다시 돌아볼 일이다. 나도 모르게 돌리고 있던 쳇바퀴에서 나오게 하시는 순간일 수 있다. 그때 삶을 더 굳건히 세우는 기둥 같은 루틴이 추출되기도 하고, 중요한 가치들이 삶에서 새롭게 열매 맺을 기반을 세팅하시는 시간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