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성벽이 되어주는 기쁨

by 푸른새벽

느 12:43 그날, 사람들은 많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면서 기뻐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기쁘게 하셨으므로 여자들과 아이들까지도 함께 기뻐하니, 예루살렘에서 기뻐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포로 귀환기 느헤미야의 주도로 예루살렘의 성벽이 재건된다. 이스라엘의 신앙과 역사는 성전이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성전과 성벽의 회복에 이렇게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데 본문의 구체적인 표현을 읽다 보면 그렇게까지, 아이들까지도 함께 기뻐할 그런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성벽을 재건하는 것에 대해 자주 묵상하게 된다. 그 당시 성벽은 이스라엘이 이방민족과 구별되는 정체성의 상징이었고, 실질적으로는 외부의 침입을 막아주는 기능을 했다. 그 상징과 역할을 생각할 때 자꾸 교회에 대입해서 생각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부모이자 어른세대로서 다음세대인 아이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마치 부모세대인 내가 아이들을 지키는 성벽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서 나보고 성벽이 되어주라고,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든든한 성벽이 되어주라고 하시는 것 같을 때가 많다.


지난 주말, 첫째 아이의 농구시합에 다녀왔다. 첫째 아이가 소속된 팀은 생긴 지 얼마 안돼서 팀원인 아이들이 농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들이 많다. 나이는 벌써 고학년을 앞두고 있는 나이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시합 상대로 붙는 또래의 아이들은 이미 저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해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늘 경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지난 주말 다녀온 친선시합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 실력이 많이 늘어서 경기가 꽤 볼만하긴 했지만 한 쿼터 이겨내는 게 쉽지 않았다. '제발, 제발, 한 쿼터만 이기고 가게 해주세요.' 두 손 꼬옥 쥐고 아이들의 시합을 지켜보았다.


계속 지고 있는데도 열심히 뛰어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또 그렇게 주님은 말을 걸어오신다. '네가 성벽이 되어줘.' 자꾸자꾸 성벽이 되라고 하신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부모가 아이들에게 안전한 성벽이 되어주면 된다고. 한 쿼터만 이기기를 기도하던 마음이 내려놓아진다. 아이들은 열심히 뛰었고 그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오늘 이기고 진 것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든든한 성벽이 되어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작고 여린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지키는 성벽 말이다.


"세움아, 진짜 대단하더라. 아빠가 그러시는데 세움이는 일단 공 잡으면 웬만해선 스틸 안 당한다고 그러시던데? 진짜 절대 안 뺏기더라."

농구 꽤 했던 아빠가 대기석에서 지나가듯 한 칭찬 한마디를 붙잡아뒀다가 시합을 끝내고 돌아온 첫째 귀에 들려주었다. 아이는 승패와 상관없이 기분이 괜찮아 보인다.


아이들이 겪어내야 할 상황들이 생각보다 아이들에게 다정하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조금의 부딪침, 조금의 불친절함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은 아이들을 둘러싼 든든한 성벽 때문이다. 그 든든한 성벽 안에 거할 때 어떠한 경험도 아이들에게 배움이 될 수 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건된 성벽 앞에서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기뻐서 외치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고 느헤미야서에 적혀있다. 부모세대가 아이들을 지키는 든든한 성벽으로 서는 일이란 주님의 시선에 이렇게 기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여기저기 부딪치는 일들이 생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부모세대는 이미 알고 있다. 아이들 간의 다툼이 상처가 되지 않고 더욱 깊은 사이로 거듭나게 하는 방법도 이미 아는 부모세대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지키는 성벽이 될 수 있다. 든든한 성벽이 되어주고자 하는 부모들에게 주님께서 주님의 지혜를 부어주시기 때문이다.


신약에서 주님은 자녀에 대해 부모에게 의외로 단 하나의 권면만 하신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어쩌면 부모들을 다음세대를 지키는 성벽으로 세우시는데 본뜻이 있는 권면은 아닐까. 아이들이 여기저기 부딪치고 좌충우돌할 수 있지만 그것이 큰 상처나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커지지 않도록, 마음껏 부딪쳐도 안전하게 배우고 자랄 수 있게 하는 스펀지 같은 성벽이 되고 싶다.


주께서 성벽이 다시 세워지는 일을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생각할 때마다 뭉클하다. 머리로만 이해되던 것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순간이다. 아이들을 지키는 든든한 성벽으로 세워지는 기쁨, 주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밤이다.

이전 25화질문하는 사람 vs 질문받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