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서 MD와 마케터 두 가지 일을 해봤던 '찐 실무' 이야기
나는 얼마 전 8년간의 중소기업 회사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오랜 시간 MD와 마케팅 업무를 병행해왔다. 첫 입사 때는 회사 내 마케팅팀이 없었다. 중소기업 중에서도 당장 마케팅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회사였다. 입사 전 마케터의 경력은 있었지만 마케팅팀이 없기에 MD의 업무를 먼저 하게 되었다. 회사가 차츰 커지면서 마케터 직원을 뽑고 마케팅팀이 생겨났다. 당시 회사 사정을 잘 알면서 마케팅을 해본 사람이 없어 새로운 마케터를 뽑았지만 회사 내부 내용을 잘 아는 사람도 필요했기에 어쩌다 보니 MD와 마케터 양다리를 걸쳐가며 일을 하게 되었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이라면 알 것이다. 하나의 역할만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불가피하게 몇 가지 역할을 요구하며 그 역할들을 수행하게 된다. 물론 나 스스로 욕심도 있었다. 하나의 일을 하다 보니 다른 일도 알게 되면 나에게 분명 큰 무기가 될 거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MD와 마케터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하였다.
MD와 마케터는 다른 업무 영역이지만 면밀히 들여다보면 일부분 서로 중복되는 부분들도 있다.
두 가지 일 모두 '상품'을 다룬다는 것이다.
MD가 다루는 상품은 매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MD의 주 역할은 판매 프로세스 고민을 통한 매출 증대가 최우선 목표이다. 판매 프로세스 안에서 상품을 중심으로 고객 경험을 기획해야 한다. 우리의 상품을 어느 쇼핑 채널에 어떻게 올리고 어떤 프로모션 기획을 통해 매출을 증대할 것인지 매일 고민하는 일을 한다. MD팀을 브랜드사에서는 흔히 온라인 영업팀이라고도 많이 불린다.
보통의 중소기업에서 다루는 상품은 개수가 많지 않다. 하지만 내가 다녔던 곳은 상품의 개수가 많았다.
판매하는 상품들의 카테고리 범주도 꽤 넓었다. 이는 장단점이 있었다.
중소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다루는 상품이 많다 보니 여러 카테고리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
MD로써 카테고리 상품별 잘 나가는 쇼핑 채널을 선정하고 등록하고 판매 기획을 하는 일들을 여러 가지로 해볼 수가 있었다. 물론 상품의 수가 많다 보니 관리의 용이성과 집중도가 떨어졌다. 한두 가지 상품을 가지고 깊게 고민하는 것이 아닌 여러 상품들을 신경 써야 하니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다양한 카테고리 상품을 다뤄볼 수 있다는 건 큰 경험이라고 생각하였다.
중소기업 상품으로 쇼핑채널에서 영업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나만 판매하는 확실한 상품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대기업의 상품들은 각 쇼핑채널 담당자들이 알아서 연락이 온다. 이 상품 이번 행사 때 특가로 노출 한번 가자고, 하지만 중소기업은 먼저 연락 오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연락하고 발품을 팔아야지 입점뿐 아니라 행사 때 한 번이라도 노출을 시킬 수가 있다.
사실 이렇게 연락이 닿아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상황조차도 주어지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중소기업에서 MD는 더 적극적이어야 하며 더 발품을 많이 팔 수밖에 없다.
마케터가 다루는 상품은 고객에게 보이고 선택될 수 있도록 모든 활동 전략 고민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통 마케터라는 업의 범주는 넓으며 세부적으로 콘텐츠, 퍼포먼스, 브랜드 등 여러 마케터 분야가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 마케터는 이 모든 걸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 일명 일당백을 해야 한다.
물론 각 분야별 잘하는 광고 대행사를 통해서 업무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중소기업은 예산의 크기가 크지 않기 때문에 쉽게 대행사에 모든 걸 맡기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거까지 해야 해?라는 업무들이 밀려온다. 정작 내가 생각했던 그럴듯한 멋진 마케터로서의 업무는 생각보다 비중이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적은 비중의 업무로 성과를 달성하면 큰 희열을 느끼게 된다. 다른 많은 힘든 업무들이 그때만큼은 잠시 잊힌다. 그 짧은 희열의 맛으로 다시 일을 하게 된다.
마케터는 우리의 상품을 고객에게 어떻게 인식시킬 것이며 고객에게 선택될 수 있도록 전략을 잘 짜야한다.
매일이 기획, 실행, 분석, 수정 의 반복이다. 생각보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분석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면 좋은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예산은 한정적이며 인력도 충분하지 않고 체크해야 할 일은 많고 그러면서 성과도 내야 하는 중소기업의 마케터. 쉽진 않지만 이겨내면 큰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상품' 다루는 MD와 마케터 역할 양다리 걸쳐가며 바쁘게 지내왔다.
퇴사를 하고 난 후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 일들을 했는지, 다시 돌아간다면 할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 그때의 경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