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리듬에 맞춰 들리던 음이 어느 순간 늘어진다. 그러다 머리에 무언가가 떠오른 듯 음이 빨라진다.
아린은 익숙한 리듬을 들으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그들의 리듬에 맞춰 어느 순간 함께 장단을 맞춰가길 기다리듯.
하지만 백지장 같은 머릿속에 자모음 음표가 그려지지 않았다.
“후아.”
결국 거둬들인 민망한 두 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저기요 아린 씨, 하품 소리가 너무 큰데요.”
옆자리 정은이 아린의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마주 보는 자리에 있는 정은은 가림막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하품 소리가 아니라…. 아 컸나요. 죄송해요.”
“같이 쓰는 작업실인데 조심 좀 해주세요.”
아린은 네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옆자리 정은은 시도 때도 없이 먹는 간식 소리며 다리를 달달 떠는소리, 키보드를 신경질적으로 치는 소리 등 불쾌한 소음을 내는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고작 얕은 한숨 소리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니 적반하장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스치고 사라졌다.
그렇다고 싫은 소리로 대답해 봐야 온종일 투덜거릴 게 뻔해 아린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리 내시면 글 쓸 때 집중이 안된다고요.”
“네.”
그때 정은 옆에 앉아 있는 서주가 의자를 돌려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은언니. 큰 소리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예민해요? 오늘 또 무슨 일 있었어요?”
서주는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 서주를 보면 어느 프로에서 MZ 세대를 표현한 한 여자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시끄러우니까 시끄..”
“아니잖아, 언니. 언니는 매일 간식 먹고 다리 달달 떨어서 더 시끄러운데. 무슨 일 있죠?”
빗겨치는 듯한 단어들이지만 마지막에 무슨 일 있냐는 서주의 말에 앞의 단어들은 깡그리 뭉개진다. 결론은 걱정된다는 뜻이니까.
정은은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는 몸을 완전히 틀어 아린과 서주 쪽을 향했다.
“아린 씨 미안해요. 오늘 멘털이 좀 나갔어요. 엊그제 론칭한 소설이요. 왕비 이야기. ”
“알죠. 초반 반응 좋다고 하지 않았어요?”
정은은 웹소설 작가로 벌써 세 작품을 내며 점차 입지를 다져가는 작가였다. 첫 소설이 꽤 잘 되어 웹소설 쪽에서도 이름이 조금 알려진 터였다.
“네. 어제 혹시 제 글의 반응이 어떨까 해서 검색을 해봤거든요.”
“그런데요? 악플 뭐 이런 거 있었어요?”
“차라리 그런 거면 낫게요.”
정은은 연이어 한숨을 쉬었다.
“뭔데요. 왜 이렇게 뜸 들여.”
“우선 저와 같은 소재의 글이 올라오고 있어요. 처음엔 그저 비슷하겠지 했는데. 웹소설이 그렇잖아요. 소재도 비슷할 수 있고 글의 흐름도 비슷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 수준이 아니에요. 캐릭터들 성격까지 비슷하고 일어나는 사건도 비슷해요. 론칭하고 이틀 후부터 연재가 시작되었고 하루에 세 편씩 올라오니 거의 절반 정도가 올라왔어요. 그럴 수 있다, 우연이겠지 하는데 대사도 비슷한 부분이 있고요.”
“뭐야. 표절이야?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서주는 정은의 말이 끝나자마자 흥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절이라고 해도 딱히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요. 완벽히 똑같이 쓰지 않는 한.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제 글을 뱃길개 맞는 것 같거든요. 아까 웹소설 작가님들이 모여있는 사이트에도 자문을 구해봤는데 어쩔 도리는 없다는 게 결론이더라고요. 저는 이 공간에서 피 터지게 머리를 쥐어짜서 써내는데 왜 함부로 빼가는지 이해가 안 돼요.”
웹소설 시장에서는 간혹 있는 일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유료화만 진행되면 억 단위도 벌 수 있다는 달콤한 말에 아린도 아무 생각 없이 웹소설계로 뛰어든 적이 있었다. 생계를 위해 뛰어들었지만 쉽게 생각했던 웹소설계는 생각보다 탄탄한 글 실력과 지구력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었다. 한 번은 베스트 1위인 소설을 읽어보고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적도 있었다. 단순히 흘러갈 줄 알았던 소설이었는데 작가의 표현력과 문장력에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연재를 시작하면 독자들과의 약속을 위해 매일 마감 시간을 지켜야 했고 조금이라도 허술하면 악플에 시달려야만 했다. 결국 아린은 백기를 들고 하차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은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비축분을 미리 준비해 두고 여유 있게 연재를 했으니까. 말이 쉽지 비축분이란 걸 쌓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답답한 이곳에서 글을 쌓아간 정은을 직접 보았기에 지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평소 조금 짜증을 내긴 하지만 오늘 같은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어떠한 방법도 없는 건가요?”
아린의 말에 정은은 고개를 저었다.
“없는 거 같아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작품, 결말이 정말 최고거든요. 제가 써서 그렇다기보다 진짜 신들린 듯이 썼으니까요. 마지막 결말 쓸 때 머리에서 폭포수 터지듯이 터져 나왔거든요. 진짜 그거까지 뺏기면. 멘털 탈탈 털릴 것 같아요. 어느 분은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 무덤덤하다고 하시던데…. 그나마 다행인 건 제 글이 먼저 론칭해서 다행이라고.”
“언니 속상할 만하네요.”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에요.”
정은은 자신의 컴퓨터 쪽으로 다가오라고 아린과 서주에게 손짓했다. 그리고 한 사이트로 들어갔다.
“이거 보이세요?”
“응? 이거 언니 글 아니에요?”
“맞아요. 여기서 무료 배포 중이에요. 론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글인데. 그런데 더 웃긴 건 저 글을 올린 작성자의 허락 없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배포할 수 없는 그런 방식이에요. 여기 글 보이시죠. 작성자의 허락 없이 배포하였을 경우 법적 처벌을 받는다. 이 글의 주인은 전데 왜 이 사람이 글의 주인 행세를 하는 걸까요.”
아린은 기가 막혔다. 아무리 불법 사이트들이 판을 치는 요즘이지만 론칭한 지 고작 며칠 지난 글을 이렇게 불법으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말도 안 돼. 이런 건 제지가 안 돼요?”
“불법 사이트로 신고가 되면 막히긴 하지만 또 나오고 또 나와요. 힘들게 론칭한 글이 이렇게 불법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게 너무 속상해요. 돈을 떠나서요. 됐어, 흔한 일이야 하고 넘기고 싶은데 잘 안 돼요.”
“당연히 그렇죠. 아휴. 마음 고생했겠다. 그래서 오늘 하루종일 저기압이었구나.”
정은은 괜한 짜증을 내 미안하다고 했다.
“이미 일어난 일 어쩌겠어요. 내일 출판사랑 이야기 한 번 해보려고요. 그리고 자꾸 거기에 신경 쓰니 글도 안 써져서 잊어버리려고 해요.”
아린과 서주는 조용히 정은의 어깨를 두드렸다.
서주는 바람이나 쐬고 오자며 1층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 가자고 했다. 아린은 싫다는 정은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의 여유를 채워야 해요. 가요. 오늘은 내가 살게요.”
마지못해 일어난 정은과 함께 셋은 작업실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2년 전, 아린은 소설 공모전에 당선됐다. 작은 공모전이었지만 아린에게는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이제는 탄탄대로 소설가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거라는 아린의 바람과는 달리 그 후 투고하는 작품마다 퇴짜 맞기 일쑤였다.
공모전에 당선된 후 당당히 사표를 던졌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35년을 살아오며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기 때문에. 겸업하라던 지인들의 말을 깡그리 무시하고 작은 공모전에 당선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으려고 했던 무지하고 무지한 시간.
다시 취직하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글로 먹고살자니 앞이 캄캄하다.
그렇다고 소설가의 꿈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글을 쓰려고 방안에 며칠을 박혀 있다 보니 엄마의 잔소리는 나날이 늘어갔고 결국 셰어 작업실을 찾아왔다.
그게 벌써 일 년.
일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은 꽤 많았다. 작업실에 몰래 애인들 데려와 데이트하다 이틀 만에 쫓겨난 시인, 작업실 안에서 흡연하다 쫓겨난 동화작가 등. 특이하고 괴짜스러운 사람들에 놀랍기도 하고 감탄스럽기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이 남는 사람은 지금은 아주 유명한 소설가가 된 민유씨다. 스물셋 밖에 되지 않았던 민유는 작업실에 들어와 딱 석 달만에 인생 역작을 써냈다. 그가 글을 쓰는 걸 보면 성공한 게 놀랍지만은 않다. 밥은 1층 샌드위치 가게에서 사 오는 참치 샐러드 샌드위치가 전부. 작업실 한편에 마련된 미니 카페에서 커피나 음료를 마시는 게 전부였다. 석 달 동안 민유는 8킬로그램이나 빠졌다고 했다. 그가 담배를 피울 때를 제외하고는 작업실을 나가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작업실의 모든 작가는 그의 키보드 소리를 두려워했다. 쉬지 않는 리듬, 강약 중간 약 조절을 하며 멈추지 않는 타자 연주. 그의 연주를 들으면 퇴보되는 듯한 기분이었으니까. 누군가가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게 남아 있는 사람들은 뒤로 밀려나는 느낌이었다. 긴 연주가 끝나면 가끔 그의 손목이 괜찮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는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석 달 만에 써낸 소설을 투고했고 투고 메일을 보냈다고 한 날 작업실을 나갔다. 그리고 두 달 전 그의 책이 출간되었다. 그것도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누군가는 석 달만에 최고의 작품을 써내고 누군가는 일 년이 넘도록 기본 틀조차 잡지 못했다.
정말 글을 잘 쓰는 것도 재능의 영역이었던가. 공모전 당선은 그저 우연이 었던 걸까.
상금 500만 원짜리 공모전에 당선돼 어깨를 하늘까지 솟아 올렸던 아린은 괜히 부끄러워졌다.
그가 나간 후 들어온 정은과 서주. 정반대 성향인 두 사람과 함께 지낸 지도 두 달이 다 되어갔다. 웹소설을 쓰는 정은과 시나리오 작가인 서주. 그들은 작고 큰 성과를 이루며 작가의 길을 탄탄히 걸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린은 아직도 허우적거리고 있다. 두 사람을 보며 자극을 받고 있지만 첫걸음이 떼어지지 않으니 엉켜진 실타래가 풀리지 않았다. 조각조각 낸 문장들을 어렵게 붙여 단락을 만들어 내지만, 다음 날이면 다시 흩어져 버리는 문장을 지우고 또 지워냈다.
아린은 소설가로 살아가는 게 맞는지 포기해야 하는지 매일 고민하고 고민한다.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는 꿈. 허황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어서 와요.”
샌드위치 가게 문을 열자 김작가님이 그들을 맞아 주었다.
건물주이자 소설 작가인 김하울. 이 작가님 덕에 아린은 싼 가격에 작가 작업실을 구할 수 있었다. 후배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다던 하울은 건물 한 층을 작가 작업실로 만들었다. 꽤 큰 작업실 안엔 누워 쉴 수 있는 방도 있었고 작은 카페도 있었다. 카페에 커피나 간식들이 떨어지지 않게 채워주셨고 샌드위치 가격도 절반만 받았다. 서로의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책상마다 가림막까지 설치해 주셨다. 물론 월세도 다른 곳보다 현저히 낮았다. 민유씨가 글을 완성하고 작업실을 나갈 때 김 작가님 덕분이라며 샌드위치 가게에 내려가 한 시간을 울고 갔다고. 그만큼 작가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기에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사람이다.
“오늘은 어쩐 일로 세 사람이 함께 왔네.”
“머리 좀 식힐 겸 해서요. 작업 중이셨어요?”
“응. 오늘은 좀 한가하길래. 샌드위치 고르고 이리 와요.”
하울은 작업 중인 테이블의 노트북을 닫고 자리를 정리했다. 세 사람은 샌드위치와 음료를 골랐다. 직원이 아린의 카드를 건네받아 결제한 후 진동벨을 건네어 주었다.
샌드위치 가게도 작업실과 같이 한 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넓은 매장 한 구석에 하울 만을 위한 테이블이 놓여있다. 처음엔 카페를 하려고 했었지만 하울은 샌드위치 가게로 결정했다.
“나처럼 글을 쓰거나 아니면 뭐 대학생들 리포트를 쓰거나. 카페에 가면 커피 하나 시켜놓고 하기가 민망할 수도 있잖아요. 물론 카페에도 베이글이나 케이크를 팔긴 하지만. 여긴 샌드위치 가게가 주 이기 때문에 좀 더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지 않을까.”
아린은 예전에 왜 하필 샌드위치 가게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하울이 대답이었다. 그런데 아린은 하울이 꽤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샌드위치 가게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카페가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하울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지 아니지. 카페는 음료. 샌드위치는 밥이잖아. 밥이 더 공부하기 편하지 않을까?”
하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게 맞는 말인 듯했다. 독특한 그의 세계관은 이상하다가도 알지 못하는 순간 그의 세계로 빠져들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