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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12. 2018

틈과 실종

학교에 간 딸이 집에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 감감무소식이다. 핸드폰도 받질 않는다. 안절부절못하고 창밖을 내다보거나 문 밖을 서성거린다. 아이들이 조금만 늦어도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은 세상을 믿지 못하는 나만의 소심증일까?


매스컴에서 보도하는 실종사건을 보면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하는 그들의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몹시 아팠다. 더욱이 아이들이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할 수도 없다.


얼마 전 실종되었던 딸이 싸늘한 죽음으로 돌아온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잡혔지만 속속 드러나는 그의 엽기적이고 잔인한 행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어떻게 인간이 그토록 잔인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잔혹한 폭력 앞에 인간은 그토록 나약하고 무력할 수밖에 없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세상은 겉으로 보기에 나름의 원칙과 질서로 잘 돌아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 삶은 무질서하고 위태로운 틈들 사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누구든 잘 못 디디면 부지불식간에 그 틈으로 빠져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틈이란 공간적 의미보다 관념적 이미지가 강하다. 소통 부재로 인한 인간관계,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과 같은 의미의 연상과 더불어 실종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만든다. 틈이란 잘 보이지 않아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며 항상 빠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한 번 빠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공간적으로 존재하는 실종은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사라짐에 따른 막연함과 미궁 속에서 모두를 두렵고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그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곳곳에 존재하며 보이지 않는 의식의 실종이다. 불의에  대한 비판의식 실종, 폭력과 범죄에 대한 죄의식 결여, 부당한 권력과 제도 앞에 실종된 정의,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생명경시 풍조, 이웃 간의 불신으로 인한 단절 등 헤아릴 수 없다.


평화로운 일상을 깨고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불행을 누구나 안고 살아간다. 헛디디면 빠지고 마는 위태로운 세상의 틈으로부터 사랑하는 자녀와 가족을 지키려 하지만 불가항력적인 세상의 폭력 앞에 주저앉고 만다. 이처럼 부조리하고 모순된 세상과 대결하는 인간의 실존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의 운명처럼 근원적인 비극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관적인 생각만 하고 있기에는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다.


인생이 떨어지는 바위를 끝없이 밀어 올리도록 처형된 시지프의 공허한 몸부림처럼 허망한 것일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이 있기에 삶이 더 소중하고 빛나는 것이리라. 비록 하루가 다르게 많은 것들이 실종되고 있지만 그 상실과 아픔의 고통을 극복하고 승화시키며 또 다른 가치와 희망을 만들어 가야겠다. 희망은 아픈 상처를 치유해 주고 어둡고 불완전한 틈을 비추어 실종된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의 선물일 것이다.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딸이 왔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전화는 왜 안 받았느냐고’ 조바심이 나서 묻는 나의 눈이 어느새 뜨거워져 황급히 돌아서는데, 그 마음을 눈치챈 딸이 나를 꼭  껴안는다. 실종된 모든 사람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도 딸을 힘주어 꼭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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