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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12. 2018

어머니와 부적

우리 가족 베개 밑에는 자식을 염려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이 숨겨져 있다. 불교 신자이신 시어머니께서는 무슨 때가 되면 부적을 가져오시곤 하였는데, 올해는 띠가 같은 모녀와 부자가 삼재가 들었다며 부적 네 개를 가져오셨다. 그런 일에 돈을 쓰시는 어머니가 좀 답답했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면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일단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리기 위해 부적을 잘 보관하겠다고 말씀드리고 각자의 베개 밑에 그것을 넣어 두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부적에 대한 믿음은 꽤 오래된 것 같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는 얇은 창호지에 이상한 그림과 글씨가 온통 붉게 새겨진 부적을 가져와 신체에 고이 간직하라고 하셨다. 아마 몸이 약한 며느리가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부적이나 점과 같은 것은 미신이라는 편견이 강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생각이 매우 불합리하다고 여겼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가 부처님의 교리와 설법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하고 부적에 의지하려는 것은 극히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면도 있지만 부적의 상당수가 절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불교는 삼국시대에 국교로 수용되면서 민간신앙을 상당히 포용해 온 것 같다. 절에 가보면 산신각이나 칠성각 등 원래 불교와 상관없는 건물들이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불교가 포교를 위해 민간신앙을 흡수해 온 증거물이라 생각된다.


불교는  민간신앙의 기복적 요소를 흡수해 민중 계층을 파고드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부분적이기는 하나 불교와 민간신앙은 상호 보완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무속 신앙에서 취급하는 부적에 절을 상징하는 표시가 유난히 많은 것도 그런 이유 중의 하나라 생각된다.


민간 신앙과 연결된 부적은 미신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그렇다고 믿기도 어려운 묘한 힘을 갖고 있다. 미신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항상 가치 판단이 내재되어 있다. 기존의 종교도 자기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는 미신이라고 배타시 하기도 하며, 또 당시 사회구조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달라지기 때문에 명확한 정의나 기준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일반적이고 건전한 상식으로 보아 매우 불합리하거나 사회에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일을 믿거나 행할 때 미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간신앙은 그 자체를 무조건 미신이라 비하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다. 민간신앙은 특정한 교조, 교리체계와  조직이 없고 일반 민중의 공동체적인 생활 속에서 전승되어 온, 당시 서민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문화와 역사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실려 전해오는 통일신라의 ‘처용가’는 역사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향가인데, 일종의 무가로 악귀를 달래어 쫓을 때 부르는 구나의식요이다. 내용에서 그 시대 민간 신앙의 일부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그 당시에 무서운 돌림병이었던 천연두를 역귀의 소행이라 믿었고 역신을 쫓는 방법으로 처용의 얼굴을 문 앞에 걸어 두었다고 한다. 일종의 부적의 역할을 한 셈이다.


부적은 대개 종이로 만들지만 재료에 따라 다양하다고 한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나무 부적을 우리 부부에게 주면서 당신의 몇 개월의 용돈을 줄여 산 것이니 소중히 간직하라고 하셨다. 그것은 벼락 맞은 ‘복숭아 나무’로 만든 것이어서 더욱 상서로운 힘을 갖는 데  이유인즉 나무가 벼락을 맞을 때 번개인이 깃들여 잡귀가 달아난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그 같은 말씀이 좀 황당했지만, 부적의 효험을 떠나서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그 부적을 아직까지 고이 간직해 오고 있다.
  

부적이나 점도 상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도에 지나치거나, 지나친 이기심과 어떤 욕망의 집착이 아닐 때는 그다지 위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도한 맹신은 마약처럼 이성과 정신을 마비시킬 수 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고 의지가 될 만한 것을 찾아 심리적 안정을 구하려 한다. 가장 흔한 경우가 종교지만 무속 신앙과 관련된 곳도 자주 찾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악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데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나약하고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과학이  발달된 오늘 날에도 미신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며, 사회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건강한 믿음을 줄 때 불합리한 미신은 자연히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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