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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15. 2018

도토리에 얽힌 추억

 


베란다를 치우다 보니 예전에 남편과 산에 가서 열심히 주웠던 도토리 몇 개가 뒹굴고 있었다.


볕에 말린다고 소쿠리에 담아 베란다에 놔두었는데 아파트 구조상 충분히 볕을 쐬지 못한 탓인지 그만 벌레가 생기고 말았다. 아까운 도토리를 버리면서 그 날의 정성과 즐거움이 함께 빠져 나가는 듯해 몹시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북한산에는 유난히 참나무가 많다. 산길을 따라 걷노라면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무척 경쾌하게 들린다. 여기저기 똑똑 떨어지는 소리는 마치 탭댄스를 연상케 한다. 새들과 풀벌레 소리가 함께 어우러질 때면 산 속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출렁이는 듯하다.


사실 국립공원에서 도토리 채집은 불법으로 돼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토리를 줍고 있었고, 우리도 도토리를 주워 온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야생동물들을 위한 배려이고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떨어진 도토리가 너무 많다보니 ‘저 많은 도토리를 조금은, 아주 조금은  가져가도 되지 않을까?’ 이기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도토리묵을 만들려면 많은 손길과 정성이 닿아야 한다. 도토리를 볕에 바짝 말리면 겉껍질이 쪼개지는데, 그때 겉껍질과 속껍질을 벗겨내면 누런 속살이 드러난다.  다음 도토리 특유의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물에 잠시 담가 둔다.  그리고 다시 볕에 말린 후 방앗간에 가서 가루로 빻는다.


예전에 시어머니께서 손수 줍고 말리고 빻아 만든 도토리 가루를 가져 오신 적이 있었다. 그 가루를 남편은 물과 적당히 섞어 가면서 한 참을 불에 놓고 뭉글뭉글 할 때까지 저었다. 그리고 죽처럼 걸쭉해졌을 때 그것을 스텐그릇에 담아 서늘한 곳에 놓아 굳혔다. 그렇게 만들어진 묵, 그 맛의 추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행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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