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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16. 2018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은 무엇일까? ( 피아노)

하얀 물결이 이는 바닷가에 쓸쓸히 놓인 피아노, 그 건반 위로 여자의 가늘고 흰 손가락이 꿈꾸듯 움직인다.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여자아이는 날아갈 듯 춤을 춘다. 감미로운 OST 'The Heart Asks Pleasure First'와 미개척지인 뉴질랜드의 신비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삶을  사랑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시대의 문제의식을 담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영화는 뉴질랜드의 여성 감독 ‘제인 캠피온'이 만들었다. 또한 여성의 문제를 주로 다루는 감독의 성향과 맞물려 페미니즘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C 뉴질랜드는 개척자들에게 더 할 수 없이 유혹적이고 매력적인 땅이었다. 에이다(여주인공)는 그녀의 딸 플로라를 데리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함께 살기 위해 이곳으로 온다. 에이다가 어떤 이유로 미혼모가 되었는지 딸의 이야기 속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 영화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미혼모가 된 딸을 그 부모는 바다 건너  낯선 남자에 보낸다.  당시 여자의 위치는 남자의 지위나 경제력에 따라 많이 좌우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부모는 결함이 있는 딸을 받아들인다는 조건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생면부지의 남자에게 그녀를 보낸다. 그녀는 무슨 사연인지 실어증을 앓고있다.

  

바다를 건너 배가 도착한 곳은 문명이 닿지 않은 원시의 땅, 그녀의 짐과 가장 아끼는 피아노가 내려진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는 그녀에게 단절된 외부 세계와의 통로이며, 구원의 존재였다. 일꾼들이 갈 길이 너무 멀고 피아노가 무거워 가져갈 수 없다고 하자 그녀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피아노는 바닷가에 쓸쓸히 남겨진다.

 

 그녀의 남편이 될 스튜어트는 원주민들의 토지를 부당하게 사들여 땅을 넓혀 나갔다. 그의 친구 메인스는 원주민과 스튜어트 사이에서 통역도 해주고 여러 가지 중요한 일을 처리해 준다.

  

에이다는 결혼식 준비에 분주한 시댁 사람들과 남편에게 무관심하다. 오직 바닷가에 남기고 온 피아노 생각뿐이다. 슬픈 표정을 짓는  엄마의 마음을 딸만이 알고 있다.

  

에이다는 베인스를 찾아가 두고 온 피아노가 있는 바닷가에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한다. 베인스는 처음에 거절하다 왠지 모를 연민을 느끼며 그녀를  바닷가로 데리고 간다. 그리운 연인을 만난 듯 애무하며 한참을 피아노를 어루만지더니, 영혼을 울리듯 혼신의 힘을 다해 피아노 치는 그녀, 그 모습을 베인스는 넋을 잃고 바라본다. 마음을 흔드는 애절한 선율에 따라 플로라는 새가 날갯짓 하듯 두 팔을 벌려 춤을 춘다. 바다가 황홀한 석양을 품으며 어둠을 몰고 올 때까지.

  

베인스는 스튜어트에게 피아노와 땅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스튜어트는 만족하며 승낙한다. 그리고 에이다를 보내 피아노 레슨을 받도록 한다. 그녀는 매일 베인스에게로 가서 피아노를 친다. 그는 그녀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만을 바라본다. 그리고 위험한 제안을 한다. 건반 하나를 칠 때마다 그녀를 만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녀도 그에게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며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와 그녀는 사랑을 한다.  그들의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스튜어트에게  들키고 만다. 그는 더 이상 그들이 만날 수 없도록 여자를 감금한다. 스튜어트는 그녀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베인스를 향한 그녀의 뜨거운 마음은 변함이 없다.

  

베인스 또한 여자를 향한 사랑으로 열병을 앓고  고통을 참지 못해 그곳을 떠 날 것을 결심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에이다는 그녀의 딸을 시켜 피아노 건반에 ‘사랑한다’는 구절을 새겨 베인스에게 진달하려 한다. 그러나 딸이 ‘엄마를 위해서 ’라는 생각에 의붓아버지에게 알리고 스튜어트는 격분한다.

남편은 그녀에게 베인스를 사랑하는지 묻는다.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응수한다. 마침내 그는 미친 듯 그녀의 손가락 하나를 자르고, 베인스를 생각할 때마다 손가락 하나씩을 자르겠다고 위 한다. 손가락이 잘리는 고통보다 그녀는 사랑을 잃은 고통에 몸부림을 친다.  결국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두 사람의 사랑 앞에 스튜어트는 굴복하고, 마침내 그들은 딸을 데리고 그곳을 떠난다.

  

배가 바다 한복판에 왔을 때 휘청거리며 피아노를 토해낸다. 그녀도 함께 빠진다. 영원히 피아노와 하나이고 싶어서 일까,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그녀는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힘을 내어 헤엄을 쳐 나온다. 삶을 선택한 것이다.

  

영화는 시대를 초월한  남녀의 사랑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서 한 여인의 유를 향한 열망 인물의 섬세한 내면 연기와  피아노라는 소재의 징을 통해 극대화되고  있다. 실어증에 걸린 주인공은 여성과 회와 소통 부재,  단절의 메타포이며,  소외의식을 극복하려는 여성의 의지가 피아노라는 상징물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피아노를 찾아주고 그녀가 피아노를 마음껏 칠 수 있도록 인정해 준 베인스야말로 그녀에겐 구원의 빛과도 같은 존재였다. 자아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그를 피아노만큼 아니 피아노를 버리고 그를 택할 만큼 깊이 사랑하게 된 것이다.

 

 모든 예술 작품 속에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삶의 모습과 정신이 흐른다. 이 영화가 페미니즘 성격이 강하다 해도 남녀의 사랑이 중심이 되는 만큼 시대의 문제의식에 대해 예리하게 파헤치지는 못한 점은  조금 아쉽다.


역사적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행동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해 왔다. 하지만 넓은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당시 인간을 지배하고  말살하는 또다른 인간의  잔혹한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


감독은 단순한 남녀의 사랑에 대한 보고서가 아닌 여성 투쟁의 일면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었다. 주인공의 새로운 자아 찾기는 여성을 핍박하는 당시 부당한 힘의 세계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려는 열망의 표현이다. 그것은 피아노를 무덤과 같은 깊은 바다에 버리고 삶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나레이션이 그녀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밤에는 바다 밑 무덤 속 내 피아노를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은 나 자신이 그 위에 떠 있는 걸 본다. 그 아래에선 모든 게  고요해서 나를 잠으로 이끈다. 그것은 기묘한 자장가이다.’  


무덤과도 같은 깊음과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고요는 폐쇄된 그녀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피아노만이 그녀의 내면에 숨어있는 열정과 영혼의 자유를 흔들어 주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피아노를 깊은 바다 속에 자신의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삶과 함께 버렸다.


손가락이 잘리고, 협박과 회유,  부당한 대우를 받는 현실 앞에서도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삶의 태도는 성별을 떠나 부조리한 삶에  굴복하지 않는 간정신승리라 여겨진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나의 내면을 흔들어 보여주는 통로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 통로가 나의 사랑과 꿈, 열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란다. 감동을 주는 영화 한 편은 우리 마음을 정화시켜 주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깊은 내면을 통해 표현되는 예술 작품은  심미적 가치뿐 아니라 정서적 감흥을 주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흐르는 피아노 선율이 마음을 애절하게 만들지만 어떤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더욱 강해지는 두 남녀의 사랑을 통해 진정성 있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살다 보면 영화 속 인물처럼 모진 시련에 부딪칠 때도 있다. 그럴 때 이 영화를 떠올리며 다시금 용기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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