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지개 경 Mar 17. 2018

사월의 끝

'사월의 끝'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는 잔인한 사월이었다. 하지만, ‘끝’이니 뭔가 나쁜 일이 지나가고 새로운 희망 같은 것이 오겠거니 생각했다. 허공을 응시하는 여주인공의 표정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끝나지 않는 우울과 절망만을 안겨준다.


인생사에서는 어둠이 지나도 밝음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나 보다. 가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무시당하고 학대받아 정신이 병들고 마음은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이 있다.

음침하고 초라한 동네,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 한 여자가 짐을 푼다. 재개발 예정이지만 언제 개발될 지 모르고, 조금이라도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전부 이사한 그야말로 오갈 데 없고, 극빈한 사람들만 머무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아파트다. 더 이상한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여주인공 현진, 진짜 그럴까?  현명하고 진실하다는 것이 반어적 표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녀는 전혀 현명하지도 진실하지도 않다. 그녀의 공허하고 무표정한 얼굴에선 꿈도 희망도 정열도 느낄 수 없다.


그녀가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능력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어두운 실상이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과 미래가 결정된다는 수저론, 그것에 절망하고 좌절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현진의 옆집에선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난다. 그녀는 집을 소개한 부동산에 항의를 하지만 그는 오히려 현진의 행동을 탓한다. 현진은 근처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사장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착취당하는 모습도 보게 된다. 그리고 잠재된 극도의 분노 때문인지 외국인 노동자가 사장을 살해하는 장면을 보는데,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환영이다.


현진은 옆집 여고생 주희와 친해진다. 그녀의 비참한 환경과 부모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고 연민을 느끼며, 그녀가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희는 엄마와 치과에 자주 가는데 알고 보니 치과 의사에게 딸을 성매매 시키는 것, 인간이길 포기한 또 한 명의 엄마, 무시무시한 장애인 아들을 둔 구멍가게 여자이다. 주희가 물건을 훔친 약점을 이용해 그녀를 장애인 아들의 성노리개로 삼는다.

어느 날 주희는 현진에게 꿈속에서 누군가를 죽였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며칠 후 구멍가게 모자가 살해되고 현진은 주희를 의심한다. 그 일이 있은 후 현진은 주희가 옥상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런데 뜻밖에 일이 벌어진다. 또 한 명의 주요 인물이 나타나는데 ‘박현진’ 그녀는 9급에서 7급으로 승진해 온 사회복지담당 박주무관이다. 여기서부터 헷갈렸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얽힌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지금의 현진이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라 추측하게 만들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허상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부동산 남자를 만나 아는 척을 하고 자신이 이 아파트 10층에서 몇 달 간 살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 던 곳에 그녀가 알고 있는 여자 애를 떠올린다. 두 명의 현진이, 누가 진짜 현진일까?  이 부분이 영화의 반전이다. 박주무관의 한마디 “네가 주희잖아”에서 진실이 밝혀진다.


사실과 환상이 교묘히 결합된 영화는 명확한 그 무엇을 알려주지 않는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물의 내면 심리와 표정, 행동과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추측하고 짐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결국 그 진실 때문에 박주무관 진짜 현진은 가짜 현진에게 살해된다.


이런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주희는 왜 현진이 행세를 하며 이 아파트로 돌아와 혼자 사는 것일까? 그것도 진짜 현진처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것은 그저 환상일까?  그런 것 같다.

이 또한 중요한 화두인 정체성 문제이다. 부정한 주희는 그때 죽었고 지금은 자신의 모델이었던,  당시 자신을 인간으로 대우해 준 유일한 사람, 현진이 언니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그녀가 나타났으니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현진이라고  믿는 왜곡되고 분열된 자아는  극단적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사회의 씁쓰레하고 어두운 단면을 너무 과격하고 잔혹하게  묘사한 부분이 없지 않으나, 알고 보면 현실은 영화보다 더 비정하고 잔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은 무엇일까? ( 피아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