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미지>를 다시 보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사랑하는 삼각관계의 플롯은 비도덕적이고 저속한 막장 스토리라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 그것을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반 통념과 맞지 않는 정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본성의 내밀한 욕망과 상처에 대한 담론이라면 진지하게 고민해 볼 문제라 생각했다.
우수에 찬 여주인공 안 나 역은 줄리엣 비노쉬, 남자 주인공 스티븐 역은 매력적인 제레미 아이언스가 맡아 열연했다. 남녀 주인공의 적나라한 정사 장면과, 불륜, 근친상간의 내용이 다소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 약간 불편한 부분은 있었지만, 영화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대로 재미있게 보았다. 이번에는 표면적인 부분보다 인물 내면에 잠재된 욕망과 상처에 초점을 두어 감상하니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 ‘데미지’는 조세핀 하트의 원작 소설을 루이 말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책은 안 읽었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통해 책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욕망과 상처에 대한 담론을 조금 더 본질적이고 섬세하게 풀어놓았을 거라 짐작해 본다.
주인공 스티븐 플레밍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모든 것을 가진 남자다. 국회의원 딸이자 누구나 부러워하는 미모의 아내, 잘 생기고 성공한 저널리스트인 아들, 사랑스러운 딸을 가진 완벽한 가정의 능력 있는 가장이다. 그의 직업은 의사이며, 정치인으로서 사회적 성공도 이루었다.
너무 완벽하고 순탄해서 운명의 신이 질투한 것일까. 그런 조건 속에 내재된 위험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할 지 모른다. 부와 명성을 이룬 후에 찾아 오는 허무와 권태는 풍요 속에 빈곤처럼 또다른 삶의 결핍을 초래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그는 위험하고 짜릿한 사랑, 말초적 쾌락에 탐닉하게 된다.
안 나 바통, 그녀의 내면엔 지독한 상처가 똬리를 틀고 있다. 그녀는 치명적이고 위험한 관계 속에서 욕정을 느낀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여러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남매는 세상과 고립되고 단절된 채 늘 서로에게 의지했다. 남매는 늘 함께 하면서 서로에 대한 강한 의존이 집착으로 변하고 급기야 비정상적인 관계로 변질됐고 결국 근친상간의 극단적 행위는 남매를 파멸로 몰고갔다.
그 후 오빠가 자신 때문에 자살했다는 죄책감은 자신은 물론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파괴하는 삐뚤어진 욕망으로 발현된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위험해요.’ 그녀의 섬뜩한 말처럼.
전도 유망하던 마틴은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한 남자지만, 그녀의 오빠처럼 그녀의 또 다른 남자 때문에 죽음을 맞는다. 그 대상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확인하는 순간 충격받은 그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결국 뒷걸음치다 아래층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져 즉사한다.
아들을 잃은 후 스티븐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 여자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만은 후회하는 것 같지 않았다. 집을 나와 아들을 잃은 슬픔과 죄책감에 빠져 거의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하지만 아직도 내면엔 그녀를 향한 지독한 사랑의 열병이 식지 않았다.
‘안 나, 도대체 당신은 누구지?’ 이성적이고 분별력 있다고 자부해 온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게 만든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녀에게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도대체 나는 누구지?’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와 주제로 등장한다. 결국 인생의 결말은 ‘나’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내가 누군지 확인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평소에 알고 있던 내가 무척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프로이드의 무의식에 대한 이론처럼 우리가 의식하는 것들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 잠재된 욕망은 무한하며, 그것을 이성이라는 무기로 잠재우고 있지만, 항상 꿈틀거리는 욕망은 어느 순간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완벽했던 한 남자의 회한과 고백을 통해 우리 내면에 잠재된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며 그것이 잘 못 발현되었을 때 파괴력은 무척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인간이 욕망을 잘 다스리는 문제는 오랜 논의의 대상이었으며, 그것을 양심과 도덕, 법이라는 장치로 누르고 있다. 그러나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기보단 우리 스스로 그것을 더 생산적이고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