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묻다 (그녀에게)

by 무지개 경

BBC가 추천한 예술성 뛰어난 영화를 찾다 우연히 보게 된 ‘그녀에게’, 스페인 영화였다. 처음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무대의 막이 오르고, 처연한 첼로의 선율에 따라 여자 무용수가 춤을 춘다. 고통스런 표정과 무엇을 갈구하는 몸짓이 비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연은 독일의 유명한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피나 바우쉬’가 열연한 ‘카페 뮐러’이다.


영화의 첫 장면을 공연으로 장식한 것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공연은 영화의 주제인 ‘남녀의 사랑’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무대 배경인 카페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어지럽게 놓여있고 앞쪽으로 문이 있다. 두 여자 무용수가 춤을 춘다. 한 명은 앞에서 다른 한 명은 뒤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듯 한 여자가 눈을 감고 온 몸을 허우적댄다. 쓰러질 듯 위태롭게 비틀대는 여자가 넘어질까 한 남자가 부지런히 의자를 치워준다. 하지만 그녀는 벽에 부딪쳐 쓰러진다. 다른 세계에 갇힌 여자에게 다가갈 수 없는 남자의 단절된 사랑을 극적으로 보여준 공연은 남녀의 교감없는 사랑이 얼마나 메마르고 공허한지를 알려준다.


카메라는 무대를 바라보는 두 남자의 표정을 클로즈업한다. 공연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남자와 그를 의미 있게 바라보는 남자. 눈물을 흘리는 남자는 마르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헤어진 연인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 그는 외로움에 다시 사랑을 한다. 그녀의 이름은 리디아, 여자 투우사다. 그는 우연히 TV에 나온 그녀의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고, 그녀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한다. 그리고 만남 후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게 되고, 그녀의 집에 나타난 뱀을 없애주며 또 눈물을 흘린다. 알고 보니 전 애인도 뱀 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뱀을 없애고 눈물을 흘리는 마르코를 보고 연민을 느낀 그녀는 그와 연인이 된다.

리디아와 함께 한 시간은 꿈처럼 흘러간다. 각자 옛 사랑을 간직한 채 그들은 스페인 작곡가 토마스 멘데즈 소사의 ‘쿠쿠루쿠쿠 팔로마’의 달콤한 음악을 들으면서 새로운 사랑에 설레지만 왠지 그들의 사랑은 불안하기만 하다.

어느 날 리디아는 마르코에게 투우가 끝난 뒤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투우 도중 사고가 일어나고, 그녀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녀가 하려던 말이 ‘옛 애인에게 돌아간다는 것’ 이었음을 후에 알게 되고 그는 의식불명인 그녀의 곁을 떠난다.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에 누워 있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는 코마 상태이다. 그녀를 정성껏 보살피는 간병인 베니그노, 그는 그녀의 온 몸을 꼼꼼히 닦아주고, 마사지해주고 일광욕도 시켜준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무용공연과 무성영화를 보고 와서 그녀에게 들려준다.

그가 혼수상태에 빠진 알리샤를 만난 것은 4년 전이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에 발레 강습소가 있다. 그곳의 학생인 알리샤를 지켜보면서 그녀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아픈 어머니를 오랫동안 간호하면서 간호사 자격증을 따고. 간병에 필요한 여러 기술을 습득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알리샤를 보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 되었다.


그는 그녀와 딱 한 번 대화를 했는데, 그때 그녀가 무용공연과 무성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다 그녀가 사고를 당했고, 의식불명이 된 것을 알자 그녀의 간병인이 되기를 청했다.


두 남자는 우연히 무용공연을 함께 보았고, 베니그노가 병원에서 알리샤를 간병하고 있을 때, 리디아의 사고로 인해 다시 병원에서 재회한다. 연인이 혼수상태에 빠진 공통점을 가진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한다.

전문가인 베니그노는 마르코에게 연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조언해 준다. 하지만 그들은 연인을 사랑하는 방식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도 내면의 갈등과 고뇌의 깊이는 달랐다. 베니그노의 알리샤를 향한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은 자신을 헌신함으로써 행복과 기쁨을 느꼈으며, 그녀를 보살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르코에겐 서로 교감할 수 없는 사랑은 너무 낯설고 괴로운 것이었다.

마르코는 리디아의 곁을 떠나며 그녀를 잊기 위해 여행을 간다. 그리고 돌아와서 리디아의 죽음을 듣는다. 베니그노도 알리샤를 강간했다는 죄목으로 교도소에 갇힌다.


감독은 베니그노가 알리샤를 강간하는 장면을 생략하고 대신 무성영화 속 남자가 여자의 질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베니그노의 강간과 알리샤의 임신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며, 사랑이 폭력으로 부각되지 않게 한다.


그가 그녀에게 사랑의 이름으로 행한 끔찍한 행위가 무성영화 속 스토리로 치환되면서 폭력의 심각성은 사라지고 사랑을 환상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사실 이 부분에서 사랑의 딜레마에 빠진 베니그노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성급히 단죄하기보다는 그의 인간적 고뇌를 이해해 주길 바라는 감독의 의도가 있는 것 같았다.


그의 행위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만 한편으론 그녀에게 모든 것을 바친 베니그노의 헌신적인 사랑이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며, 그녀를 끝까지 책임지려 한 그의 진실된 사랑을 무조건 비난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한편 베니그노가 마르코에게 의식불명인 알리샤와 결혼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마르코는 부정적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마르코의 태도를 통해 감독은 궁극적으로 남자의 사랑이 아무리 순수하고 진실돼도 상대가 수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폭력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 사건 이후 임신이 됐던 알리샤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는다. 알리샤는 베니그노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사랑으로 의식이 돌아왔지만, 희생적 행위가 잘못된 사랑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것이 베니그노의 죽음을 통해 드러난다. 그는 교도소에서 그녀가 죽었다는 잘뭇된 소식을 듣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무용 공연과 클래식 음악, 악기 연주와 서정성 짙은 스페인 노래, 흑백 무성영화 등 다양하고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감성을 자극하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또 두 남자가 의식불명인 두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을 통해 사랑은 결코 일방적일 수 없으며, 상대가 원하지 읺으면 아무리 숭고한 사랑이라도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상대와 교감하고 소통하며 서로를 존중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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