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3주... 그리고 2일

by 무지개 경

모처럼 동유럽권의 영화를 보았다. 루마니아 영화이다. 2008년 개봉작, 각본과 감독은 크리스티안 문쥬, 200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소재의 한 대학 허름한 기숙 룸메이트인 가비타와 오틸리아는 무슨 일인지 매우 분주하다. 다른 친구에게 물고기 밥 주는 것도 부탁하고, 빌려줬던 드라이기도 가져오고, 가방에 세면도구와 옷가지를 챙기는 등 여행 준비를 하는 듯 보인다.

이 영화는 뭐랄까,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은 매우 사실적이고 생생한데, 전체적인 배경분위기는 대체로 어둡고 무겁다. 외면은 일상의 모습이지만, 내재된 영화의 맥락은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감이 감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난다. 가비타, 그녀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고, 당시 불법이었던 낙태를 감행하려던 것이었다. 룸메이트인 오틸리아는 가비타를 위해 남자친구에게 돈도 빌리고 낙태할 장소도 예약하고, 불법낙태 의사인 베베도 만난다.



사건이 전개되면서 처음 영화 스크린에 새겨진 1987년의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 해에 루마니아 혁명이 일어났는데, 그 전까지 루마니아는 차우세스쿠 공산독재 치하에 있었다. 독재자는 인구는 국력이라는 명분아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낙태는 물론이고, 피임약과 도구까지 판매 금지시켰다.


부패한 독재정권으로 인해 국민들은 가난에 허덕이며 불철주야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 기를 여유가 없었다. 그 와중에서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위험한 선택을 해야 했는데, 불법낙태는 그것을 시도한 여성뿐만 아니라 불법 시술 의사도 걸리면 최고 10년까지 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낙태를 받았으며, 부작용으로 50만 명의 여자들이 죽었다고 한다.


영화는 특별한 클라이맥스 없이 차분히 진행됐지만, 리얼리즘 영화라 생갹하니 긴장과 공포감이 고조돼 보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가비타가 전화로 미리 예약했다던 모텔로 오틸리아가 찾아갔을 때 예약은 돼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어긋난 계획은 다가올 비극을 암시하는 듯 불안하게 돌아간다. 오틸리아가 어렵게 다른 모텔을 얻었지만 더 비싼 숙박료를 지불해야 해서 어렵게 마련한 돈도 줄어들고 있었다.


오틸리아는 가비타 대신 베베라는 불법낙태시술자를 만난다. 여기서 감독의 치밀한 구성과 섬세함이 돋보인다. 불법시술자의 인간적 고뇌의 한 단면도 잊지 않고 화면에 담는다.


오틸리아가 베베의 차를 타고 아비타가 기다리는 모텔로 가는 중, 베베는 잠깐 들릴 데가 있다며 한 빈민촌에 차를 세운다. 하릴없이 의자에 앉아 있는 힘없는 노인의 모습이 잡힌다. 대화를 통해 그 노인은 베베의 노모임이 드러난다.


여기서 감독은 베베와 같은 불법시술자가 생기는 이유를 당시 부조리한 사회에서 찾았으며, 베베로 대변된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위험한 일을 감수하고 있다는 현실인식을 보여준다. 사회 환경이 어떤 문제를 잉태하고 있으며 그것이 개인의 실존을 규정한다는 사실이 새삼 안타까웠다.

드디어 베베와 가비타의 만남이 이뤄지는데,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가비타가 임신개월 수를 속인 것이다. 당초 베베가 제시한 조건은 그가 지정한 모텔로 예약하는 것이었지만, 그것도 지켜지지 않았고, 2개월이라던 태아는 4개월이 넘은 것으로 밝혀진다.


베베는 이때부터 여성을 위협하는 폭군이 된다. 4개월 된 태아의 낙태는 살인이고, 그같이 위험한 시술은 돈만 받고 해 줄 수 없다며 그녀들의 몸을 요구한다. 여자들이 당혹해하며 망설이자 그는 비정하게 돌아선다. 순간 가비타는 그에게 간청하며 매달린다. 이를 괴롭게 지켜보던 오틸리아는 결국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한다. 이 부분에서 무척 혼란스러웠다. 현실이라면 과연 친구를 위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론 절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을 이해해보려 했다.


영화의 제목이 함축하고 있는 무서운 사실에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졌다. 한 여자가 4개월 된 태아를 품고 3주간의 절망과 고통에 갈등하며, 2일간 무자비한 결정을 단행해야 했던 충격적 사건이 오틸리아의 시각을 통해 생생히 전달된다.


영화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던져준다. 이처럼 참혹하고 불행한 일이 어떤 특정한 시대에만 존재했을까? 지금은 아닐까? 여자를 출산 도구로만 여기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정부는 물론이고, 아직까지 남성 중심적 사고가 세계 곳곳에 존재하며,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팽배하다.

후진국일수록, 독재체제 하에서, 그리고 권위와 무력을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오틸리아가 남자 친구 집에 갔을 때 가부장적인 가족과 친지들이 대놓고 여성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하지만 남자 친구는 모른 척한다. 그리고 그녀가 가비타에 대한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만약 '나도 임신을 하면 어쩔 것이냐'는 물음에 '그럼 결혼해야 겠지'라는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대답만 한다.


영화가 전하는 주제의 핵심은 생명의 소중함과 같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인간의 이념과 체제, 탐욕과 같은 이기심 때문에 소중한 생명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어떤 경우라도 인권을 탄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임신을 하고 낳는 일까지 정부가 강압적으로 간섭하고 감시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비이성적이며 비인간적인 행위이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 참을 기억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더러운 모텔 방에서 안전장치 하나 없이 위험한 낙태시술을 받던 장면, 두려움과 공포에 젖은 눈으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가비터의 무기력하고 허무한 표정, 죽은 태아를 가방에 넣고 버릴 장소를 찾아다니며 어둠 속에서 괴로워하던 오틸리아의 모습, 그리고 모든 일을 다 치르고 난 두 여인의 식당 테이블 재회, 너무도 담담하게 마주치는 눈빛, 그래서 더 슬프고 가슴 시린 그녀들의 무언의 대화가 내 맘 속에도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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