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흔적을 찾다.

by 무지개 경

【영화 써치】를 보았다. 제목처럼 영화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찾고 또 찾는 영화였다. 검색창이 뜨고 많은 파일이 저장된 화면을 하나하나 클릭하니 딸아이가 성장해가는 모습, 부부와 아이의 행복한 모습들이 경쾌한 음악과 함께 펼쳐진다. 영화가 눈길을 끈 점은 영화의 주요 인물들이 한국계 미국인이란 점, 모든 이야기가 화면 속 화면을 통해 시작되고 전개되며 결말을 맺는 특이한 구성방식 때문이다.

행복했던 가정은 마고의 엄마가 암으로 죽으면서 시련을 겪는다. 부녀 사이도 벽이 있는 것처럼 서먹해지고, 대화도 데면데면 주로 컴퓨터 화상 채팅이나 SNS로 한다. 물론 마음은 서로 애틋하지만 함께 사랑한 사람의 부재와 결핍이 주는 아픔의 무게를 각자의 몫으로 버티느라 본의 아니게 옆의 소중한 사람을 세심하게 챙겨주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실종됐다. 목요일 밤 딸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한 데이빗은 다음 날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평소처럼 딸에게 연락을 한다. 하지만 답이 없다. 오후까지.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 그는 실종신고를 하고, 전담수사를 맡은 여형사(데브라 메싱)를 도와 딸의 행방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가출일거라 말하는 여형사, 데이빗은 가출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딸의 흔적을 search한다.

딸의 흔적을 찾으면서 알게 된 사실들이 데이빗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가 알고 있던 딸의 모습이 아니다. 데이빗은 그동안 딸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버지로서 딸의 행방에 대해 물어볼 친구 한 명도 모르고 있었다는 현실이 당혹스럽다. 딸에게 관심을 갖고 정성을 다했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나! 부모는 자녀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진정으로 자녀와 소통이 이뤄지지 못했음을 느낀다.

데이빗은 자신이 알던 밝고 성실하고 음악을 사랑하던 딸의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그녀의 컴퓨터 속 세상에서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친구들의 무관심과 따돌림으로 외롭게 학교생활을 했던 딸, 엄마를 잃고 더욱 우울해진 딸이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자주 가던 호수며, 최근 피아노 레슨도 받지 않고 레슨비를 어딘가로 송금한 일 등 속속들이 밝혀지는 사실에 데이빗은 망연자실한다.

영화를 보면서 화면의 전개방식이 무척 낯선 만큼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한 점이 새롭게 느껴졌지만, 스토리는 가족이라는 인간 보편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전혀 생소하지 않았다. 특히 딸을 찾으려 안간힘 쓰며 괴로워하는 데이빗의 강한 부성애가 드러난 장면에선 마치 내 문제인 것처럼 감정이입 돼 초조와 긴장감이 느껴졌다. 딸을 가진 부모의 시선이기에 그의 안타까움과 슬픔이 마음속 깊이 생생히 와 닿았다.

결말은 반전이었다. 반전이니만큼 내용은 생략하고 느낌만 간단히 적는다. 소중한 자식일수록 어릴 때부터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질수 있도록 교육하는게 중요하다. 자식이 귀하다고 그가 저지른 행위를 은폐하고, 해결해주어 무책임한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면 결국 자식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자식은 어떤 면에서 부모의 심장과 같다. 그만큼 치명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심장만큼 다른 누군가의 심장도 중요한 것이다. 영화에선 범인의 부모가 이런 사실을 무시함으로써 선택한 잘못이 얼마나 무모하고 비인간적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자식에 대한 삐뚤어진 애정이 참혹한 결말로 드러나는 순간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영화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현시대를 조명하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세태와 그것이 야기하는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다. 다양하고 많은 소통 매체, 각종 SNS, 일인방송, 동영상 등 누구나 쉽게 접속해 직접 만나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기에 익명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고 얼마든지 상대를 속일 수 있다. 영화에서도 그런 특성을 악용해 범인은 마고와 채팅을 한다. 디지털 세계의 명암을 느깔 수 있었던 , 한편으론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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