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의 슬픈 얼굴
그라나다의 붉은 성 알함브라 궁전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장관 속에 슬픈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한때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했던 이슬람 왕조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그라나다, 카스티야 왕조의 이사벨과 아르곤 왕조의 페르난도가 결합해 더욱 강성해진 카톨릭 세력에 밀려 꿈처럼 황홀하면서도 관능적인 알함브라를 떠나야 했던 무어인들의 황망한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들의 자존심, 인간이 만든 더 할 수 없이 완벽한 창조물을 두고 쫒겨가는 그 심정을 헤아려 본다. 잠시 머무는 나그네조차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이곳을.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등지고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을 바라보며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 난공불락의 요새에서 병사들은 밤낮 없이 적의 동태를 살펴봤을 터이다. 알카사바 요새는 알함브라 궁전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지금은 모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망루와 병사들의 숙사, 창고와 목욕탕 등 그들의 삶을 증언하는 낡은 흔적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요새 중앙에 서 있는 벨라의 탑에 올라가니, 눈앞에 펼쳐진 알바이신지구의 수려하고 장엄한 경관이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다. 인고의 역사와 세월의 풍파 속에도 시대를 초월한 하나의 정신, 민초의 끈질긴 생명력이 응집돼 살아 숨쉬는 터전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알함브라 궁전은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매력을 발산한다. 경쾌하면서도 우아하고 관능적인 아라베스크 문양에 엄숙하고 장엄한 고딕식 건축이 가미된 부조화가 오히려 생경한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더해준다. 이베리아반도의 패권을 차지하려 경쟁하던 호전적이고 대립적인 두 세력의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본성이 경이로운 건축물 위에서 하나가 된 것처럼, 이사벨이 무어인을 추방하면서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밴 알함브라를 파괴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들의 삶을 덧댔던 것처럼.
곧고 길죽한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아기자기한 분수들이 경쾌한 멜로디를 뿜어내고 있었다. 술탄의 매혹적인 왕비와 어여쁜 후궁들이 거닐었을, 별처럼 아름다운 꽃들에 둘러싸인 정원은 수 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섬세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물질적 아름다움과 우아함은 무력이라는 방부제에 의해 유지되고 지속될 수밖에 없는 비극을 잉태하고 있다.
다양한 민족, 종교,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형성된 스페인 속 안달루시아지방의 그라나다는 알함브라 궁전의 독특한 얼굴로 상징된다. 알함브라의 숨겨진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워싱턴 어빙, 니코스 카잔 차키스, 프란시스코 타레가 등 스페인을 사랑한 문학가, 예술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통찰과 혜안을 빌려 궁전을 바라보니, 실제로 내가 보고 느꼈던 그라나다의 알함브라보다 휠씬 깊고 심오했다.
내가 그처럼 감탄한 겉모습 이면에 파란만장한 질곡의 역사를 품고 있는 알함브라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표정이 감춰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알함브라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겉모습만을 보고 칭송한다면, 그것의 진정한 모습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란 자각이 들었다. 비록 생의 무상함 속에 역사의 주인공들은 가고 없지만, 알함브라는 언제까지나 그곳에 있을 것이다. 역사가 존재하는 한, 그들 승패의 무용담은 알함브라 곳곳을 무대로 후세에 길이 회자될 것이기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알함브라를 응시했다. 그러자 아름다운 모습 속 슬픈 얼굴이 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