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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an 14. 2019

지리멸렬

늦겨울 짚더미에 불이 붙는다. 알맹이 다 털어내고 껍데기만 남은 것들은 타닥타닥 뼈 소리를 내며 재가 되고 겨울은 그렇게 물끄러미 먼지가 된다. 그을린 소주병 몇 개와 육포 몇 조각이 누군가가 바로 전에 시키지도 않은 자기 변론을 했음을 알려준다. 짚불 앞에서 느끼는 거지만 인생에는 지리멸렬한 요소가 있다. 깔끔하게 털지 못하는 그 무엇, 질척거리는 헛소리 같은 게 있다. 가늘고 긴 인생들에게 불꽃 몇 개가 날아든다. 찬 하늘에선 눈이 내렸다. 헛소리가 다시 시작된다.                     
                                     
                                   ―허연(1966~ )





데기만 남은 것은 가볍다.
가벼운 것은 약한 바람에도
미세한 자극에도 
흔들리고,부딪히고, 부서진다.

묵직한 알맹이로 채워지지 않은
은 껍데기처럼 헛헛하.
무엇에 들릴 때마다 
요란한 소릴 낸다.

헛소리, 신세 한탄이
매서운 겨울을
막아줄 수 없다.
추워서 불가로 가지만
곧 재가 돼 사라질 존재. 

우리 삶도 그럴 것이다.
꿈과 희망을 가슴 속에
품지 않는다면  
메마르고 황량한 겨울처럼
지리멸렬한 삶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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