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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18. 2018

G .G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

  

 부엔디아 가문의 선조가  마을을 건설하면서 시작된 가문의 역사는 7대 백 년을 거쳐 마지막 후손이 마을의 멸망을 목도하기까지 참으로 파란만장하다  그런데 결말이 놀랍다. 백년에 걸쳐 일어난 일들은 집시 멜끼아데스가  한 가문의 일대기를 양피지에 기록해 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것을 마지막 후손이 해독하는 동시에  ‘마콘도는 영원히 사라지고, 백 년 동안 시달린 종족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없다’고 예언돼 있었다.

이 책은 가상의 공간 마콘도’를 배경으로 호세 아르카디아 부엔디아 가문의 수 대에 걸친 번영과 쇠퇴,  사랑과 고독, 절망과 파멸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 소설의 의미를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다양한 비유와 상징, 역설과 아이러니, 풍자  다채롭고 현란한 수사적 표현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함축된 의미를 깊이 사유하게 만든다.  그리고 낯설고 생경한 동화적 발상과 역사적 리얼리티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작품의 독창적 가치를 더 해 준다.


처음 마콘도는 ‘가장 질서 있고 열심히 일하는 곳’으로 죽은 사람 하나 없는 영생의 왕국이며 평화로운 곳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집시가 들어오면서 문명의 도구들이 전파되자  마콘도 사람들은  과학적 힘과 서양 제도에 매료돼 전통과  순수성을 잃고 타락하며 결국 몰락의 길을 걷는다. 

마콘도를 처음 건설한 호세 아르카디아 부엔디아는 콜롬비아의 원주민으로 마을을 이끌어가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아내 우르슬라는 스페인계 상인을 조상으로 두었다. 이 둘의 결합은 스페인과 콜롬비아의 역사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내란 중 마콘도로 들어와 이곳이 폐허가 되기 직전까지 서점을 경영한 스페인 사람 ‘카탈로니아의 현인’은 책 더미 속에 묻혀 많은 양의 원고를 집필하는데, 이는 콜롬비아에 대한 스페인의 정신적 지배를 의미하고 있다. 이렇듯 외부에서 온 인물과 원주민의 관계맺음을 통해 힘의 논리가 어떻게 작용되고 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의미가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이야기 속에는 콜롬비아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가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다. 평화롭던 마을에 미국 회사들이  바나나 농장을 건설하고 원주민 노동자를 고용하며 막대한 돈을 번다. 열악한 환경과 착취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참다못해 파업을 단행하지만 정부군이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3천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학살된다. 하지만 이 엄청난 사건의 진상은 은폐된다. 파업을 직접 주도한 호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그는 오히려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작품 곳곳에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로 인해 고통을 겪은 콜롬비아의 불행한 역사가 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생각과 행동을 통해 풍자돼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역사적 사실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사실적 리얼리즘의 성격이 강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 작품은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새롭고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함께 살면서 서로 대화하고 고통을 나눈다. 몇 년 전에 죽은 집시 멜끼아데스가 갑자기 나타나 부엔디아 가문의 일들을 참견한다거나,  집시가 가져온 양탄자나 담요를 마을 사람들이 타고 날기도 하고 심지어 그걸 타고 사라져 버린다, 어떤 사내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다가 뱀이 되어 버린다. 부엔디아 가문의 한 아이는 돼지 꼬리를 달고 태어나고, 레베카라는 인물은 흙과 벽에서 긁은 석회를 먹고산다. 난로에 얹어 둔 우유가 끓지 않아 주전자를 열어보니 그 속에 구더기가 득실거린다.


그리고 마을을 덮친 재앙의 원인이 불면증이거나, 4년 넘게 내리는 비처럼 기괴하고 음울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일들이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고 사람들에게 불신을 심어주고,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육체적 관계에 탐닉하는 인물의 행위를 보면서 작품이 말하고자하는 의미를 논리가 아닌  직관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마술적 리어리즘은 사실과 허구, 현실과 환상이 교묘하게 결합돼서 마치 모순어법이 삶의 진리를 내포하고 있듯 초논리적인 일들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자연스럽게 여겨지도록 만든다.


‘부엔디아’란 스페인 말로 ‘좋은 나날’이다. 반어적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부엔디아 가문의 후손들이 선조들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들의 폐쇄적이고 순환적인 가문의 비극성을 암시한다. 근친상간으로 상징되는 그들의 도덕적 타락은 가문의 몰락과 멸망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그들은 수없이 반복되는 이름처럼 근친상간을 되풀이한다. 결국 마지막에 이모와 조카인 아우렐리아누와 아마란타 우르슬라가 관계를 맺어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를 낳는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콜롬비아의 역사는 제국주의에 희생된 약소국의 비극을 담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타락과 파멸의 원인이 외부에만 있지 않다는 보편적 삶의 교훈을 전하는 듯했다. 한 가문의 멸망이 외적인 영향 외에 내부의 무지와 도덕적 타락, 주체성의 결여와 같은 개인과 집단의 모순 속에서 기인됐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의 시작과 끝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절대 고독의 인간 숙명과 같은 부조리함을 안고있다. 이처럼 '백년동안의 고독'은  한 나라와 지역의 특수성을 초월하여 인간 고독의 보편성을 통찰하고, 인간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사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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