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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19. 2018

가즈오 이시구로의 <우리가 고아였을 때>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우리가 고아였을 때」를 읽었다. 책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전 후로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횡포가 극에 달하고,  식민지들은 그들 대로 정치적 이념 대립과 권력다툼으로  크고 작은 전쟁을 하며 폭력을 일삼았다. 그런 와중에 주인공을 비롯한 선량하고 무고한 많은 사람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가족과 친구, 추억과 기억을 잃고 헤매는 가엾은 고아가 된다.


고아가 된 주인공 ‘나’ 크리스토퍼 뱅크스는 영국의 유명 탐정이 된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실종된 부모를 찾아 상하이로 떠난다. 당시 상하이 외국인 거주지역인 조계에서 유년을 보냈던 주인공은 일본인 친구 아키라를 기억하고,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그리워한다.

사실 주인공은 영국에서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런던에서 살며 사교계에서도 인정받는 유능한 탐정으로 성공한다. 그가 맡은 사건이 해결될 때마다 그의 명성도 높아졌다. 사라라는 매력적인 여인도 만난다. 하지만 부와 명성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의 공허한 마음은 유년에 갇혀 있다.


고아라는 정체성의 부재는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핍으로 삶은  알맹이 없는 껍질처럼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본능적으로 뿌리를 찾기 위해 유년의 기억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부모의 실종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은  추리소설적 흥미 뿐만 아니라 정체성 찾기라는 인간 본연의 심오한 철학적 문제의식을  함축하고 있어서  작품의 가치를 더 늪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부모님의 실종과 관련해 어린 시절 기억의 퍼즐을 맞춰간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아편무역을 하는 영국회사의 직원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아편무역의 부도덕성에 적극적으로 맞서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 용기있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부부의 대립적 입장 때문인지 어린 주인 눈에 비친 부모님의 모습은 왠지 비밀스럽고 부자연스러웠다. 당시 아버지의 행동과 표정에서 느꼈던 당혹감과 불안의 그늘, 그것을 어린 주인공이 인지하고 얼마 안 돼 아버지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리고 아버지 실종 후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마저 실종된다. 어린 그를 걱정하는 필립삼촌과 지인들의 결정에 따라 주인공은 영국의 이모 집으로 가서 살게 된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런던에서 우연히 어릴 때 부모를 잃은 주인공을 상하이에서 영국으로 데려다 준 해군 대령을 만난다. 그것을 계기로 그는 생각만 하던 일에 착수하게 되고, 상하이로 간 주인공은 부모님이 인질로 잡혀있다고 생각한 곳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일본군과 중국군의 치열한 전투 속으로 들어가게 된 주인공은 그 곳에서 만신창이가 된 일본군 아키라를 만난다. 그리고 마지막, 소름끼치게  참혹하고 무자비한 진실을 알게 된다.


이중간첩을 지칭하는 노란 뱀, 그는 그가 그토록 따르고 좋아했던 필립삼촌이었다. 주인공은 필립의 입을 통해 모든 진실을 듣게 된다.

당시 중국은 공산당과 장제스의 국민당이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군벌세력들은 무력으로 잔인한 폭력을 일삼으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질서와 법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힘과 권력만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었다.

군벌 중 가장 강한 세력가인 왕 쿠는 아편무역을 독점하고 많은 부를 축적한다. 왕 쿠는 주인공의 어머니를 납치해 자신의 첩 중 히나로 삼았다.


진실은 실로 냉혹했다. 기억이라는 것은 매우 불완전하며 때론 자신이 바라는 대로 미화되기까지 한다. 주인공 아버지의 실종은 전혀 뜻밖의 사실을 전해준다. 그는 정부와 홍콩으로 애정도피를 했으며, 추문으로 인해 말라카이로 도망갔고 결국 장티프스에 걸려 싱가포르에서 사망했다는 사실밝혀진다.

필립의 말에 의하면 주인공의 아버지는  아내를 무척 사랑했지만  그녀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자괴감에 절망했다. 그리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건 개의치 않는 여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실종된 날 필립이 어린 주인공을 데리고 집을 나서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히 알면서도 방관했던 이유도 밝혀진다. 필립 또한 주인공의 어머니를 욕망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복수심에 왕 쿠의 여자로 전락하길 바랐다는 고백을 한다.


필립을 통해 밝혀지는 사실들은 매우 충격적다. 주인공이 영국에서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하고 대학도 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모가 부자여서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왕 쿠에게 모진 수모와 학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자신을 희생한 대가였다. 그녀가 수치스러운  끝내지 않은 것은 사랑하는 아을 위해서였다. 아들의 양육비와 교육비는 결국 왕 쿠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주인공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할 수도 없다.


고통이 큰 만큼 비극적 결말이 주는 교훈도 크다. 그는 홍콩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간다. 어머니는 기억을 잃었지만 그가 퍼핀이라는 애칭을 썼을 때 순간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지금껏 단 한 순간도 어머니는 자신을 잊은 적 없으며,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강렬히 느낀다.


작가는 고아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 내면의 고독, 본질적 외로움의 근원이 무엇인지 통찰하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심오한 물음을 던져 독자 스스로  고민하고 성찰하게 만든다. 


인간세상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고아였는지 모른다. 탄생도 죽음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존재의 절대고독은 인간 실존의 실체이며 숙명이다. 그래서 누구나 고아처럼 근원적 외로움을 안고 산다.

세상에 혼자라고 생각될 때 우리는 정신적 고아가 된다. 그래서 함께 하는 삶이 필요하고 더욱 가치가 있다. 외로운 존재끼리 서로 사랑하고, 힘이 돼 주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고아라는 결핍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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