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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Nov 04. 2023

기억이라는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찬찬히 생각하면 더 많이 기억할 수 있겠지만, 내용보다 이미지나 소리, 냄새로 떠오르는 기억들이다.


소풍 갈 때 어머니가 주신 오백 원짜리 은빛동전, 어머니를 기다리던 사무실에서의 타자소리, 밖으로부터 들려오던 어머니의 활기찬 구둣발소리, 익숙한 숨소리, 헛기침 소리, 그리고 어떤 표정, 체취,  기억의 편린들이 허공을 떠돈다.


분명 그 기억은 언젠가 일어났던 사실일 텐데, 조금만 상세히 기억하려면 뒤틀린다. 마치 노이지가 발생해 이미지에 굴곡이 생기거나 불필요한 잡음이 생겨 기억하고픈 열망에 혼란을 주고 만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에 필요한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그러한 시도는 그리움에서 슬픔으로 바뀌기도 한다. 마치 기억의 시간은 저녁 무렵 그림자처럼 길어지고 희미해지다 마침내 땅거미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듯하다.


오래된 일들을 정확히 기억하기란 어렵다. 기억은 불분명해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오해와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더욱 그렇다. 또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아름답고 순수했던 시간으로 치환하고 사실이 왜곡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은 빛바랜 사진으로 마음이나 정신 어딘가에 놓여 향수처럼 그리운 시간들을 떠게 한다. 그런 감정들은 잠시나마 피곤한 삶에 위안을 고 행복을 느끼게 준다.


무언가를 시작할 나이보다 정리할 나이가 가까워질수록 오래된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싶은 게 일반적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경우는 그렇다.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고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궁금해진다.


낙엽이 쌓여가는 고즈넉한 공원길을 걸으며 불완전한 기억이나 상념들을 담을 불완전한 글을 생각한다. 그리고 불완전한 삶이기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처연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생명체는 거대한 우주의 일부며, 불완전도 완전의 부며, 기억의 저편도 이편의 일부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길을 걷고 있는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섭리 감동, 그걸 기억하고 느낄 수 있는 삶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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